지난 19일 국어 '일타강사' 박광일 씨가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2017년부터 2년간 아이디 수백 개를 동원해 경쟁업체와 강사를 비방한 혐의다. 이를 가장 먼저 폭로한 건 수학 일타강사였던 '삽자루' 우형철 씨다. 하지만 그는 박 씨의 구속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박 씨의 구속이 알려진 뒤 우 씨의 유튜브 채널에 그를 응원하는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10여 년 전 우 씨의 강의를 들었다는 한 이용자는 '이겼어요. 이 사람아, 얼른 일어나봐요'라며 우 씨의 쾌유를 빌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우 씨의 불법 댓글 폭로를 언급하며 '정의가 승리했다'는 댓글을 남겼다.
'댓글 조작 폭로' 인터넷 강의 업계 흔들어
스타강사·법정 공방·뇌출혈…기구한 운명
"하늘나라 가면 불법댓글 잡았다고 얘기하겠다"
"콘텐츠 투자 못하니까 조작"…'삽자루' 말하는 불법 댓글
뇌출혈로 쓰러지기 한 달 전,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법 댓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비판했다. '불법 댓글과의 전쟁'의 포문을 연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댓글조작이 일어나는 이유로 스타 강사에 좌우되는 업계 구조를 꼽았다. 우 씨는 "지나치게 한 강사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되면 학원은 많은 계약금과 강의료를 강사에게 양보해야 한다"며 "더 이상 좋은 콘텐츠에 투자할 여력이 없을 때 결국 선택하는 게 불법 댓글 조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법 댓글에 1억 원을 투자하면 100억 원어치의 광고 효과가 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 씨는 "버스나 포털 팝업창에 강사 얼굴을 띄운다고 해도 이걸 보고 수강할 학생은 많지 않다"며 "하지만 수험생 커뮤니티에 'A강사가 최고다'라는 댓글이 계속 달리면 학생들은 이걸 믿고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 씨는 스타 강사도 댓글 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불법 댓글이 특정 강사를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쟁 강사를 헐뜯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 씨는 "'분명 저 강사도 댓글조작 할 거야'라며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들 그만둘 수 없다"며 "'서로 불법 댓글 달지 말자'고 약속해도 어떻게 믿겠냐"고 말했다. 그는 2015년 불법 댓글 근절을 위해 클린인터넷강의협의회를 만들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폭로 후 패소로 경제적 어려움도…"명강사였던 것보다 자랑스러워"
불법 댓글 폭로로 인강(인터넷 강의) 업계를 흔들어 놓은 우 씨에게 시련도 닥쳤다. 2019년 6월 전 소속 학원 이투스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져 75억 8300만 원을 물어주게 됐다. 우 씨는 이투스 측이 불법 댓글 조작 등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지만, 법원은 조작의 증거가 없다며 이투스의 손을 들어줬다.
한 입시 업계 관계자는 "당시 우 씨는 댓글조작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패소할 줄 몰랐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패소로 우 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송에서 졌다는 기사가 나고, 식당에서 만난 한 제자가 '괜찮냐'고 물었다"며 "나를 기억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지만, 그때 그 학생 밥값을 내줄 돈조차 없어서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아직 의식 못찾아…"선생님 씩씩한 모습 다시 봤으면"
우 씨는 한때 스타강사로 인기를 끌었던 사실보다 불법 댓글과의 싸움이 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 강사를 하면서 돈을 벌긴 했지만, 불법 댓글과의 전쟁은 내 돈을 쓰며 했다"며 "폭로 이후 온갖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폭로하지 않았다면 댓글조작은 더 심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내가 대한민국의 불법 댓글을 없앴다'고 꼭 얘기하고 싶다"며 "내가 잘못한 게 좀 있어도, 이 활동한 걸 좀 고려해서 봐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긴 인터뷰를 통해 인강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했던 우 씨는 한 달 후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졌다. 우 씨의 소속 학원인 스카이에듀 관계자는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 씨의 유튜브 채널에 한 이용자는 "선생님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아쉽다"며 "어서 의식을 회복해서 씩씩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궁민·남윤서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