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막한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는 일반적으로 고궁박물관 전시하면 연상되는 왕실의 화려·섬세한 유물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에 초점을 맞춰서다. 태조 이성계가 무관 출신이고 휘하의 왕자·장수들도 사병(私兵) 성격이 강한 군사들을 육성해 개국한 것을 고려하면 왕조 출범에서 군사력은 중요한 기반이었다. 유교를 국시로 공표한 조선은 군사력 과시를 국가의례 형태로도 발전시켰다. 군례는 길례(吉禮, 제사의식)·가례(嘉禮, 혼례)·흉례(凶禮, 장례)·빈례(殯禮, 사신 접대)와 함께 국가의 5대 의례에 속했다. 이번 전시에선 이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갑옷과 투구, 무기와 다채로운 군사 깃발 등 유물 176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고궁박물관, 유물 176건 전시
디지털 활용한 활쏘기 공간도
한쪽 벽면 전체를 30여장의 깃발로 채운 것도 이채롭다. 오늘날과 같은 통신체계가 없을 당시 혼란한 전투 상황에서 명령을 전할 땐 시청각 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신호체계를 형명(形名)이라 하는데, 각종 깃발과 악기라고 이해하면 된다. 압도적인 크기(가로 3.5m, 세로 4m)의 교룡기(국왕을 상징)를 비롯해 5방위를 나타내는 황룡(중앙)·청룡(동)·백호(서)·주작(남)·현무(북)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각각의 수호신을 그린 형형색색 깃발은 사기를 북돋우고 국왕의 군사권을 상징했다. 북·징·나각(소라껍질)·나발 등 신호용 악기들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부 ‘조선 국왕의 군사적 노력’과 2부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로 이뤄졌다. 군비발달 혹은 전쟁사 소개는 아니라서 임진왜란·병자호란을 통한 군사적 변화 등을 보여주진 않는다. ‘역덕’(역사 덕후 혹은 애호가)이나 ‘밀덕’(군사 덕후)이 아니고선 의례 유물로 연결고리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임경희 학예연구관은 “군사의례 연구가 극히 드물고 근현대 격변기를 거치며 유물도 많지 않다. 입문 내지 개론 성격의 전시로 추가적인 연구와 고증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시에서 선보인 장수용 갑주 네 벌 가운데 상태가 뛰어난 세 벌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품이다.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 등 총 40여 점이 독일에서 건너왔다. 독일은 1883년 한독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조선에 진출해 각종 생활 물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전시장 한쪽엔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활쏘기 체험 공간도 있다. 3월 1일까지 예약을 통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