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이재명 속도전 겨냥…"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나"

중앙일보

입력 2021.01.19 18:14

수정 2021.01.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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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방역이 먼저인 걸로 정리했다. 돈을 푸는 건 2월 말은 돼야 논의할 거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소속 재선 의원)

“자영업을 포함한 현장 경제가 작년보다 훨씬 안 좋다. 지원이 시급하다.” (이재명 경기지사 측 관계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하는 경기도민 1인당 10만원 재난기본소득이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표 측이 지도부 회의를 거쳐 시기상조론을 전달했지만, 이 지사 측은 여전히 설날 이전 지급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8일 저녁 이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자체의 자율권을 존중하지만, 방역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달라”는 당의 입장을 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는데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둘렀다가 문제가 생길까 조심스럽다”는 취지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당의 의견을 존중하고 방역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집행 시기와 대상, 수단을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이 지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는 정책의 필요성과 예산 우선순위에 대한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적자, 당 내부에선 “경기도가 2월 초 지급을 단행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날 경기도청 안팎에서도 이 지사가 이르면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공식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재명의 속도전 vs 이낙연의 신중론

이 지사의 행보가 빠른 건 권한과 명분이 모두 본인에게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지사는 그간 “국민을 가난과 부채에 내몰고 유지하는 형식적 재정 건전성은 무의미하다”(지난 12일), “경제방역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지난 13일)며 명분을 쌓았다. 


경기도의회가 지난 11일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경기도에 공식 제안하면서 절차적으로도 이 지사 본인의 결단만 남은 상황이 됐다. 당 지도부가 “방역 당국과 조율되지 않은 성급한 정책”(지난 13일 김종민 최고위원)이라며 제동을 걸자 “18일까지 당이 입장을 정하라”고 요청하며 승부수를 띄운 것도 이 지사였다.
 

홍익표 정책위의장(가운데)은 18일 저녁 이재명 경기지사에 전화를 걸어 경기도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밝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왼쪽)의 생각과 맞물려있단 평가다. 오른쪽은 김태년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이런 속도전에 당혹스러운 건 이 대표다. 여론이 서서히 무르익으면 당·정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겠단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정치적 명운이 걸린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극적 효과가 필요한 이 대표 입장에선, 경기도의 움직임이 정부 결정을 앞당길까 경계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일 밤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움직임에 대해 “지금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소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고 사실상 이 지사를 겨냥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중진 의원은 “이 지사가 개인플레이를 하면서 ‘신중히 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초선 의원 역시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이 자신의 브랜드라는 걸 알고 이런 행보를 하는 것”이라며 “당이 쫓기듯 결정하면 부수효과는 결국 이 지사가 누린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그러면서도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지사와 각을 세우지 않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 “갈등처럼 비치는 것을 잘 정리할 책무가 있다”(지도부 3선 의원)라거나 “엇박자가 나거나 신경전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정책위 핵심관계자)고 밝히는 식이다.   
 

“1차 재난지원금처럼 불쏘시개 될 것”

경기도가 전 도민에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다른 지역에서 “정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집행하라”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그랬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당·정은 소득 하위 50~70%에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 했다. 하지만 경기도와 강원도를 포함한 지자체가 우후죽순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면서, 결국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가구당 최대 100만원씩 전 국민에 돈을 나눠줘야 했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이 지사는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조속히 전 국민에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역시 그런 국가적인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다만 이 지사의 일방 독주에 대한 당내 견제 심리는 변수로 남아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 지사가 지지율로는 앞서지만, 아직 당 전체로 보면 소수다. 홀로 너무 치고 나가면 예전과 달리 당내에서 직접적인 공격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은 이 지사 측도 모르지 않는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이날 “여느 때보다 이 지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며 “20일쯤 최종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오현석·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