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인천광역시 서구에 있는 국립생물자원관의 박제 작업실입니다. 자연사하거나 사고사한 동물의 사체를 기증받아 연구·교육 목적의 박제로 만드는 공간입니다.
[애니띵] 국내 첫 '공무원 박제사' 류영남씨
경력 35년의 그는 국내에서 공무원으로 채용된 첫 박제사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한국뜸부기, 국제 보호종 큰바다사자 등 1000여점의 동물을 박제했습니다.
그가 전문 서적과 씨름하면서 만든 생동감 넘치는 박제 동물들은 귀중한 생물자원이자 훌륭한 교육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류씨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동물이 찾아왔을까요?
#'국가 공인 1호 박제사'가 들려주는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1년에 100여 마리 박제…제주 바다사자도”
- 오늘 박제할 동물에 대해 알려주세요.
- 오늘은 괭이갈매기인데요.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가 돼 치료하던 중 자연사했어요. 자세히 보면 오른쪽 날개가 꺾여있고 배가 홀쭉하죠. 아마 날지 못해서 굶은 것 같네요. 오늘은 이 괭이갈매기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 박제하는 동물은 주로 어떤 경로로 오나요?
-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을 텐데요. 대부분 전국야생동물구조센터, 유역환경청, 조류도협회 등을 통해서 자연사하거나 사고사한 동물이 기증됩니다. 도심 주변이나 도로에서 사고로 죽는 동물이 많이 있어요. 산이 가까운 곳, 특히 건물 외벽이 유리로 된 경우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죽는 경우도 많아요. 유리에 비친 산을 진짜 산인 줄 착각하고 들이받는 경우죠.
- 얼마나 많은 박제 작업을 하나요?
- 연간 100여점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계절별로도 들어오는 시료의 양이 천차만별인데요. 이게 철새의 이동시기에 따라 달라져요. 철새가 이동할 때 새들이 사고사를 많이 당하거든요. 여름 철새가 들어오는 4~5월과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가 나가고 들어오는 9월~11월 사이 많이 기증됩니다
- 박제사로 일하며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 박제를 동물 사냥을 통해 만든다고 생각하거나 불법으로 볼 때도 잦아요. 또 박제를 '혐오스러운 기술'로 보는 경우도 있고요. 저를 인터뷰한 어느 기사에 '동물이 한번 죽었으면 됐지 왜 두 번 죽이는 일을 하냐'라고 붙은 댓글을 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박제사는 단순히 동물을 박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연구용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그런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박제기술정보와 테크닉이 부족했을 땐 실물을 100% 구현하지 못해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죠.
- 가장 기억에 남는 박제 작품이 있다면
- 대부분 박제하러 온 동물은 사고를 겪고 오기 때문에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게 많아요.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몸무게 4~5g짜리 새를 박제해본 적도 있어요. 제주도 비군도 앞바다에서 폐사한 바다사자도 떠오릅니다. 바다사자를 인양해서 오는 과정이 일주일 이상 걸렸는데 그동안 성게들이 바다사자의 사체를 훼손해 가슴이 아팠죠. 부패가 진행되는 중에 박제해야 해 작업도 까다로웠고요.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남겨주고 싶어서 열심히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 작업이 굉장히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 수달 같은 경우는 박제 건조까지 15일 정도로 잡아요. 바다사자 정도 되는 큰 시료의 경우엔 48일까지도 걸리죠. 포유류와 조류는 박제과정이 다 다른데요. 일반적으로 시료가 들어오면 세척한 뒤 머리, 날개, 몸 전체 길이 등을 측정하고 가죽을 벗깁니다. 가죽이 벗겨진 몸은 따로 유전자 시료 은행으로 보내서 유전자 시료로 확보하죠. 포유류는 가죽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염장 작업을 추가로 해야 합니다. 그 뒤에 날개, 머리 등에 고정할 수 있는 철사를 넣습니다. 다음으로 솜을 넣어 근육을 만든 뒤에 몸통 크기의 모형을 넣어 대략적 틀을 만들죠. 마지막으로 의안을 넣고, 포즈를 잡아준 상태에서 건조를 시켜줘요.
- 박제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도 많을 텐데…
- 가끔 국립생물자원관에 전화가 와요. 집에서 십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박제가 가능하냐고요. 이럴 때 가장 난감하죠. 하지만 죽어서도 곁에 계속 두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니까 듣기 좋게 거절했던 기억이 나네요. 혹은 본인이 사고사당한 동물을 주웠는데 박제가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도 많이 오고요. 그럴 땐 "전국야생동물센터로 보내달라"고 설명해 드려요.
"죽은 동물에 새 생명 주는 보람된 직업"
앞으로 그의 목표는 박제기술에 대한 길잡이책을 만들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류씨에게 배운 제자는 7명인데요. 그중 3명은 서울대공원, 낙동관생물자원관 등에서 박제사로 활약 중이죠. 그는 오늘도 죽은 동물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사고사당해서 엉망인 모습으로 들어온 동물들이 제 손을 거쳐서 새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품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학생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 얼마나 보람을 느끼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왕준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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