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20일) 밤,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2002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이탈리아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은 18분 만에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카테나치오(빗장수비)의 이탈리아는 ‘선제골=승리’라는 공식의 팀이다. ‘월드컵 첫 승리와 16강, 아쉽지만 선전한 한국 축구’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거의 다 썼다.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졌다. 가격 폭락한 배추밭 갈아엎듯 기사를 갈아엎었다.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의 서든데스 결승골이 터졌다. 한국의 2-1 역전승. 기쁨을 젖혀두고, 빛의 속도로 기사를 마감했다.
마감을 끝낸 뒤 동료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경기를 복기했다. 그때가 21일 새벽 1시쯤이었다. 바로 그 시각, 이탈리아 대표팀이 숙소인 충남 천안의 국민은행 연수원으로 돌아왔다. 독이 오른 선수들은 숙소 기물을 부쉈다. 주먹과 발로 벽을 내리쳤다. 날이 밝았고, 그들은 오후 3시쯤 귀국길에 올랐다. 떠난 자리에 남은 건 난동의 잔해였다. ‘승부에서도 지고, 스포츠맨십도 저버린’ 대표 사례다.
이왕 미국 얘기를 꺼냈으니, 아름답게 졌던 한 인물 얘기도 해보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스티븐 더글러스는 평생의 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30여년간 여러 선거에서 경쟁했다. 사랑을 놓고도 경쟁했다 한다. 더글러스는 마지막 대결이었던 1860년 대선에서 링컨에 졌다. 더글러스는 남북전쟁이 터지자 발 벗고 나서서 링컨을 도왔다. 더글러스가 미국 전역을 돌며 30만명의 북부 의용군을 모은 건 미국사 명장면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일인칭단수』에 수록된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의 한 구절이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131쪽)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