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인 국민의힘 예비 후보들에 비해 안 대표 지지(24.9%,리얼미터)는 압도적이랄 수 있다. 안 대표로서는 정치 입문 10년 만에 찾아온 황금 같은 기회다. 그러니 판을 흔들어 서울시장 보선과 대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욕심을 낼 만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2012년)·박원순 서울시장(2011년)에게 잇따라 후보를 양보하면서 얻은 ‘철수 정치’라는 오명과 ‘만년 3등’(2017년 대선과 2018년 서울시장 선거)이라는 비아냥을 떨쳐낼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안철수 블랙홀에 빠진 제1야당
당 밖에서 인물 찾는 ‘외주 정치’
노풍 부른 2002 국민경선 참고할만
인물난 탓 말고 멋진 경선판부터
정권에 염증난 국민이 정권교체로 선회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시사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힘은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경선 일정도 확정 짓지못한 채 우왕좌왕하면서 앞다퉈 안 대표에게 달려가기 바쁘다. 내부 경선은 시작도 하기 전에 설익은 통합을 제안하고(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 단일화를 전제로 한 조건부 출마를 제의한 것(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치 공학만능적 사고이자, 무기력증에 빠진 만년 ‘외주(外注) 정당’의 민낯이다. 난관에 봉착했을 때, 스스로 체질을 바꾸고 자강(自强) 노력을 하기보다 당 밖으로 눈을 돌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게 그간의 생존방식이었다. ‘외주의 고착화’다. 지난 총선이 절정이었다. 당내에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의 2인자(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워 폭망했다. 그 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 물론 야권이 분열돼 3자 구도가 되면 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란 불안과 우려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럴수록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에 군침 흘릴 게 아니라 혁신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방법을 찾는 게 정상적 사고다.
‘노무현 돌풍’의 진원지가 된 2002년의 민주당 경선을 벤치마킹해볼 법하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지지율 1%대의 꼴찌 후보였다. 그랬던 그가 민주당 후보에 이어 대통령 당선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국민 참여 전국 순회 경선 방식에 있었다. ‘16부작 주말 드라마’로 불렸던 전국 순회 경선의 세 번째 무대 광주에서 노 후보가 대세론에 안주하던 이인제 후보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계 적자 출신인 한화갑 후보를 따돌리고 1위를 함으로써 판을 뒤엎는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당원·대의원이 아닌 일반인의 후보 경선 참여를 허용하는 건 도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누구나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민주당 안으로 끌어모을 수 있었고, 전국을 도는 지역별 경선으로 조직·자금 동원 능력보다 인물·정책 대결을 부각할 수 있었다. 이를 정치 공학의 승리쯤으로 폄훼하는 건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형식 파괴뿐 아니라 ‘국민 참여’라는 시대정신을 담아낸 것이 성공의 요체였기 때문이다.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고 한 칸트의 말처럼 내용과 형식은 서로를 규정한다. 형식의 변화가 내용의 변화를 견인하듯, 내용이 달라지면 형식의 외피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국민의힘은 인물난을 탓하기 전에 어떻게 경선을 성공시킬 것인지부터 고민하라.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당 안팎의 후보들로 멋진 경선판부터 만들어보라. “계속 간만 본다. 유감스럽다”(정진석 위원장)며 안 대표를 탓하는 건 시간 낭비다. 안 대표 지지율이 20%대의 박스권(2017년 21.4%,2018년 19.6% 득표)에 정체돼 있는 건 위기이자 기회다.
혁신적인 경선 시스템을 도입해 멍석을 깔아주는 게 지도부가 할 일이다. 시대정신을 어떻게 당 안으로 갖고 들어올 것인지, 지지자를 결집시킬 힘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땜질 처방에 급급한 ‘외주 정당’에 미래는 없다.
이정민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