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체제가 출범한 1995년부터 8번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제3지대 인물이 바람을 일으킨 선례는 두 번 있었다. 1995년 무소속 박찬종 후보와 2011년 무소속 박원순 후보다.
막판에 꺼진 돌풍…기호 7번 ‘무균질’ 박찬종
“서울시장 선거 D-42일, 박찬종 후보는 여전히 인기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20대와 대학생 사이에서 그의 지지는 대단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1995년 5월 17일자 중앙일보 기사)
당시 기사의 한 대목처럼 1995년 서울에는 ‘박찬종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해 5월 1일, 선거를 한 달 앞둔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자의 지지율은 37.4%로 24.2%를 기록한 제1야당(민주당) 조순 후보나 18.1%에 그친 여당(민자당)의 정원식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유명세에 힘입어 박 후보는 남양유업의 우유 광고 모델로도 나섰는데, 광고 문구인 ‘무균질 우유’에 빗댄 ‘무균질 정치인’은 곧 자신의 정치 슬로건이 됐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박 후보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민주당이 선거 막판에 영입한 경제부총리 출신의 조순 후보가 ‘경제 시장’ 이미지를 내세워 약진했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떠나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막후에서 조 후보를 지원한 영향도 컸다.
결국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의 최종 승자는 조순 후보(205만표, 42.3%)였다. 박 후보는 162만표(33.5%) 득표에 그쳤다.
패배가 확정된 뒤 박 후보는 “이번 선거는 나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싸움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안철수 등에 업은 기호 10번 박원순
조순 시장 이후 고건(민주당)→이명박(한나라당)→오세훈(한나라당) 등 양당 후보가 이겼던 서울시장 선거는 2011년 보궐선거 때 다시 제3지대 바람이 불었다. 당시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청년 멘토 이미지로 '안철수 현상'이란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해 9월 5일 중앙일보-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39.5%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안 교수는 그러나 하루 뒤, 돌연 박원순 무소속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불출마 뜻을 밝혔다. 한 자릿수 지지율을 맴돌던 박 후보는 단숨에 야권 1위 후보로 급부상했다.
기세를 올린 박 후보는 단일화 경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됐다. 안철수 바람에다 단일화 바람까지 탄 '기호 10번' 박 후보는 10·26 보궐선거에서 215만표(53.4%)를 얻어 186만표에 그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46.2%)를 꺾고 무소속 서울시장이 됐다.
2021년, 기호 2번이냐 기호 4번이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안 대표에게 노골적일 정도로 부정적인 데다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이른바 국민의힘 ‘빅2’가 출마 의지를 내비치면서 함수가 복잡해졌다.
이는 곧, 야권 후보가 기호 2번(국민의힘)과 기호 4번(국민의당) 중 어떤 기호를 달지 모른다는 얘기다. 2번과 4번 후보가 동시에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3자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야권의 최종 후보가 누가 되든 단일화 없이는 승리도 없다”(국민의힘 3선 의원)는 정서도 강하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