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행심위는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이미 승인한 입지조건을 환경영향평가에서 다시 따진 것이나 환경영향평가서 보완 기회를 더 주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양양 지역주민은 환영했지만, 환경단체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정인철 상황실장은 “입지조건을 환경영향평가의 부대조건으로 넣는 것에 사업자도 동의했었고, 보완할 시간을 2년 6개월이나 줬는데도 통과 못 했다”고 반박했다.
적폐로 규정, 부동의 처분했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되살리고
4대강 복원 결정도 계속 미뤄
분칠한 얼굴로 희망만 갖게 해
아무튼 국립공원·천연기념물·생물권보전지역·유전자보호림·백두대간보호지역 등 설악산의 다섯 겹 보호막이 뚫렸고, 대한민국 어디든 개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처럼 핵심 환경정책이 뒤집혔는데도 정부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박 정부는 ‘산악 관광 활성화’라는 명분이라도 내세웠는데, 문 정부에서는 명분도 철학도 실종됐다. 정인철 실장은 “환경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국립공원도 못 지키면서 그린뉴딜, 탄소 중립이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정부가 환경을 살릴 것처럼 떠벌여 기대에 부풀게 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미루기만 한다는, 이른바 ‘녹색 희망 고문’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터져 나온다.
4대강 복원 공약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는 환경단체 활동가 1인 시위가 이어졌다. 총리가 위원장인 국가 물관리위원회가 금강·영산강 복원과 관련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데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금강 유역 물관리위원회에서는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해체, 백제보 상시 개방을 권고하는 최종 의견을 확정했다. 영산·섬진강 유역 물관리위원회도 죽산보 해체와 승촌보 상시 개방 의견을 채택, 석 달 전 국가물관리위원회로 넘겼다.
문 정부는 2017년 5월 4대강 보 수문개방을 발표하면서 2018년 말까지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보다 2년이나 늦어졌지만 결정된 게 없다. 엄동설한 속 1인 시위에는 문 대통령 임기 안에 4대강 복원작업이 시작이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담겨있다. 환경운동연합 신재은 국장은 “정부가 선거를 의식하는 바람에 환경부의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 구성부터 늦어졌다”며 “4대강 복원은 더는 정쟁 대상도 아닌데 정부가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진보 정권이라고 해서 환경친화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경기 부양책으로 골프장 허가를 남발, 수도권 녹지를 훼손해 두고두고 비판받았다. 2004년 11월 환경단체들은 ‘환경 비상시국 회의’를 구성, 서울 광화문에서 장기간 농성까지 했다.
김은경 전 장관은 퇴임 직전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경제성장 정책 이행 방안으로 토건 산업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한 (진보든 보수든) 결국 똑같아지는 것”이라며 “진보 정부에서도 경제 작동구조를 지속 가능한 발전 쪽으로 전환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어느 정부든 개발 사업을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 정정당당하게 설명할 의무는 있다. 개발해야 하면 개발 이유를, 환경을 지키지 못하면 훼손 이유를, 정책이 바뀌면 바꾼 이유를 말이다. 묵묵부답인 이 정부를 보면서 녹색 분칠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뒤로는 표를 얻기 위해 개발사업자를 둘러업는 ‘희망 고문’을 남은 500일 동안에도 계속 당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