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달 18일 "진실을 밝히는 데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한 지 닷새 뒤 벌어진 일이었다.
2019년 3월 文 "명운 걸라" 닷새 만 김학의 긴급 출금
알고 보니 '무혐의' 사건, 존재 않는 사건 근거로 위법
제보자, 증빙 자료 포함해 국민권익위 공익신고 접수
야당 "민간인 사찰 및 불법 출국금지 의혹 특검해야"
무혐의 사건번호로 출국금지→존재 않는 사건번호로 사후 승인
긴급 출국금지는 출입국관리법상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범죄 피의자로서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 23일 오전 0시 20분 인천공항발 태국 방콕행 비행기를 타려고 전날 밤 10시 48분 출국 심사를 마친 뒤 탑승동으로 이동했다. 그는 출국 10분 전 23일 0시 10분 공항 출입국청 직원들로부터 출국금지 사실을 통지받고 탑승을 제지당했다. 당시 진상조사단 소속 이 검사가 2분 전 0시 8분 전산으로 긴급 출국금지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검사가 긴급 출금 요청의 근거로 적은 사건번호 ‘서울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가 김 전 차관이 2013년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성폭력 혐의 사건번호였다는 점이다. 긴급 출국금지 사유가 될 수 없는 사건을 근거로 출국을 막은 셈이다.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을 출금 조치한 뒤 6시간 이내 법무부 장관에 제출한 긴급 출입금지 승인 요청서에 기재한 사건도 역시 허위였다. 이 검사는 승인 요청서에는 무혐의 사건 대신 ‘2019년 내사 1호’라는 서울동부지검의 새로운 내사사건 번호를 적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동부지검 내사 1호란 사건 자체가 없었다. 같은 해 5월 30일에 내사 1호 사건번호가 처음 생성됐는데 김학의 전 차관과는 전혀 별개의 입찰방해 사건이었다는 게 신고 내용이다.
애초 과거사위 파견 검사, 수사권 없어 출금 권한도 없었다
애초에 이 검사가 당시 수사권이 없는 과거사조사단 파견 신분이어서 자신에게 출국금지 권한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요청을 했다는 것도 의혹의 대상이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차관이 진상조사단 공개 소환에 불응한 직후여서 조사단에 출국금지 권한이 없다는 게 이미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며 "이 검사도 법적 권한을 대검찰청에 문의해 '진상조사 결과 발표나 수사의뢰 없이 출금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또 긴급 출금 요청은 수사기관의 장인 서울중앙지검장이나 서울동부지검장이 법무부 장관에 요청하게 돼 있지만, 이 검사는 결재를 받지 않고 본인 서명만으로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했다. 법적 권한도 없는 사람이 적법 절차도 밟지 않고 허위 공문으로 민간인의 여행의 자유를 제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학의 정보 177회 열람…이택진 땐 "수사기관 요청없이 불가능"
실제 법무부 직원 3명은 2019년 4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법무부 내부 감찰을 받았다. 김 전 차관의 출입국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신고자는 신고서를 통해 “당시 법무부 감찰조사는 개인정보를 김학의 측에 유출한 사실만을 감찰했다”며 “민간인 사찰행위와 이 과정에서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행위 등에 대해서는 전혀 감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의 177차례 출입국 조회를 거친 김학의 전 차관 긴급 출금은 이혁진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 대한 늑장 출금과도 대비된다. 이 전 대표는 2018년 3월 22일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전 대표 출국 다음 날인 3월 23일에야 그를 출국금지했다. 이 전 대표는 김 전 차관과 달리 당시 횡령·탈세 등 5가지 혐의로 검찰 피의자 신분이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늑장 출금 논란에 대해 "이혁진 전 대표의 출국금지 여부는 수사기관의 의뢰가 없으면 확인할 수도 없다"며 "수사기관 의뢰가 없으면 출입국 기록은 조회도 하면 안 된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국민권익위의 공익신고 조사와 별도로 검찰도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 힘이 지난달 8일 공익제보 내용을 대검찰청에 수사의뢰한 데 따라 법무부가 있는 정부과천청사 관할인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수사 중이다.
법무부·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위법에 일제 '침묵'
하지만 의혹 장본인인 이 검사는 물론 연루된 법무부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은 일제히 침묵했다. 세 기관은 이번 의혹 관련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밝힐 입장이 없다”고만 말했다. 이 검사의 긴급 출국금지를 사후 추인해달라고 요청한 의혹과 관련한 당사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당시 동부지검 고위 관계자, 이 검사 등도 중앙일보의 해명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은 이후 진상조사단의 수사의뢰로 검찰의 재수사를 받았으며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별장 성접대 의혹과는 별도 뇌물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하남현‧강광우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