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도적 행위 주권면제 안 돼, 韓에 재판권 있다"
"상상 힘든 극심한 고통, 1인당 1억원 지급하라"
1991년 故김학순 할머니 도쿄소송 30년만 승소
피해자 12명, 2013년 조정→2016년 정식 재판
日 외무성 남관표 주일대사 초치…"항소 안 해"
교도통신 "日정부 자산압류 땐 즉각 보복 조치"
위안부 소송에서 최대 쟁점은 피고가 다른 나라 정부이기 때문에 한국 법원이 재판 권한을 가지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가면제(國家免除)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며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인 주권면제론을 주장하며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고 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박한 것이다.
이어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이 배상을 받지 못한 사정을 볼 때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에서 피고가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면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할머니들 日 법원서 패소 뒤 우리 법원으로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김학순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 대해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일본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발효된 날(1965년 12월 18일)부터 20년 존속기간이 만료해 소멸했으며, 1947년 국가배상법 제정 이전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메이지 헌법에 따라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본 정부에 각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우리 법원에 냈지만 일본 정부가 소장 접수를 거부했다. 사건은 조정 불성립으로 2016년 1월 28일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고 지난해 4월 소송제기 약 4년 만에 첫 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공시송달 방식으로 직권으로 일본 정부에 소장을 전달했다.
日 "국제법 위반…항소는 안 해" 무대응 고수
일본 정부가 배상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원고 측은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에 나설 수 있다. 앞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달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인 피앤알(PNR) 주식 8만175주에 대한 압류명령을 송달했다. 다만 자산 압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 측을 대리한 김강원 변호사는 “일본 정부에 대해 강제 집행이 가능한 자산이 있는지 별도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한 파장도 예상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사법부 재판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는 한 한·일관계는 더 나빠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교도통신은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에 나설 경우 일본의 보복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원고 측이 일본 대사관이나 소유 물품을 압류에 나설 경우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위반이라는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비엔나협약 제22조는 "공관 및 지역 내에 있는 비품, 기타 재산은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라ㆍ박현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