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도라에몽, 도널드 덕, 미키 마우스, 이웃집 토토로 등 1980~90년대를 지나온 세대들에게 익숙한 만화 캐릭터들이다. 코로나 사태로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즐거웠던 향수를 선물한다.
수백만원 가방에 찍힌 만화
이 깜찍한 개틱터는 200만원 상당의 클래식한 명품 가방 위에 눕고 뛰고, 입맛을 다시기도 하며 천연덕스럽게 자리한다. 구찌 도라에몽 캡슐 컬렉션(작은 규모로 자주 발표하는 컬렉션)은 한국에 정식 발매되진 않지만, 구찌 글로벌 웹사이트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구찌는 디즈니 캐릭터인 도널드 덕을 새겨 넣은 토트백 등을 발매했었다. 가방부터 핸드폰 케이스까지 유쾌한 모습의 도널드 덕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 가죽 브랜드 로에베는 둥실둥실 귀여운 캐릭터 ‘토토로’를 택했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 ‘스튜디오 지브리’가 1988년 발표한 만화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주요 캐릭터로, 친절한 숲의 정령으로 등장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인기 캐릭터인 토토로는 아름다운 자연과 동심의 세계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하다.
로에베가 지난 5일 공개한 2021 봄여름 시즌 캡슐 컬렉션에는 토토로와 그의 친구들이 핸드 프린트돼 있는 가죽 재킷과 티셔츠, 스웨트셔츠, 가죽 가방, 가죽 액세서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인류에게 자연의 중요성은 오늘날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며 “환상의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자연과의 조화가 이 컬렉션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를 상징하는 디즈니 캐릭터는 패션 브랜드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캐릭터다. 지난해 12월 뉴욕 패션 브랜드 ‘코치’도 ‘디즈니 미키마우스 X 키스해링 컬렉션’을 공개했다. 일러스트레이터 키스 해링이 1980년대에 그린 미키마우스가 강조된 가죽 가방, 재킷 등이 포함된 컬렉션으로 ‘모두를 위한 예술’을 상징한다.
추억의 캐릭터를 소환하는 건 패션 브랜드만이 아니다. 스위스 고급 시계브랜드 오메가도 무려 1000만 원대의 시계에 친숙한 만화 캐릭터 ‘스누피’를 새겨 넣었다. 1970년에 미국의 나사(NASA)가 오메가에 수여한 ‘실버 스누피 어워드’의 5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0월 출시된 시계다. 실버 스누피 어워드는 우주 계획 중에서 특히 큰 공적을 올린 회사나 그룹에 대해서 나사가 수여하는 명예상이다. 스누피는 195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만화 ‘피너츠’의 주요 캐릭터로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덕분에 나사의 안전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채택됐다.
젊은 층 노리는 럭셔리
하지만 최근엔 이런 캐릭터 패션의 영역이 티셔츠나 스웨트셔츠 등 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저가 아이템 위주가 아닌, 명품 시계나 가방·주얼리 등 고가의 럭셔리 제품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한두 개 주력 제품만이 아니라 40~50개가 넘는 전체 컬렉션 제품 모두에 캐릭터를 새기는 등 보다 과감해진 것도 특징이다.
또한 추억 속 만화 캐릭터를 활용해 ‘향수’를 자극하려는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이는 코로나 블루 등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행보이기도 하다. 모두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캐릭터를 담은 패션으로 힐링 효과를 노린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추억의 캐릭터는 과거 회상 효과가 있다”며 “현실이 힘들수록 치열하지 않았던 유년 시절 혹은 과거를 상징하는 캐릭터에 편안함을 느끼고 이를 통해 위로받으려는 심리를 파고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