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까지 간 돼지열병, 북한강 방어선 뚫렸다…전국이 비상

중앙일보

입력 2021.01.06 05:00

수정 2021.01.0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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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중앙포토]

사육 돼지와 멧돼지에 치명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최근 강원도 영월까지 퍼지면서 북한강을 따라 설치한 광역 울타리로는 더는 확산을 저지하는 데 한계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사육농가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멧돼지 포획을 지금보다 강화하는 방식으로 ASF 방역 대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영월 멧돼지 폐사체 전파 경로 미스터리
전국 농가로 바이러스 전파 위험 높아져

"영동고속도 남쪽 광역울타리 비현실적,
농가에 울타리 설치, 멧돼지 포획 강화"

하지만, 정확한 분석도 없이 멧돼지 포획을 강화할 경우 자칫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영월 발견 멧돼지 폐사체 미스터리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지점. 기존 발생지점에서 훨씬 남쪽으로 내려온 강원도 영월지역에서 최근 ASF 감염 폐사체가 발견됐다. 자료:환경부

환경부와 강원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어 지난 1일에는 1㎞가량 떨어진 주천면 금마리 일대에서 다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 6마리에서도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방역 당국에서는 추가 확산을 우려해 16㎞의 차단 울타리를 설치하고 수색을 강화하는 한편, 반경 10㎞ 내 사육 농가에 대해서는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고 방역을 강화했다.
 
문제는 이곳까지 ASF가 어떻게 확산했느냐다.
 
영월 지역은 이전까지 ASF 감염 멧돼지가 발견된 강원도 춘천이나 인제 지역에서 남쪽으로 80~90㎞ 뚝 떨어진 곳이다.
 
환경부는 영월군 폐사체 발견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8㎞에 걸쳐 정밀 추적 조사에 나섰지만, 추가 폐사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전파 과정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환경부는 지난달 중순부터 홍천·양양·횡성·평창·강릉 등 춘천 남쪽 지역에 광역 수렵장까지 설치하고, 포획한 멧돼지 약 1100마리에 대해서는 바이러스 전수 검사를 시행하고 있지만, 바이러스 검출 사례는 없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사람의 부주의로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역학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 지역에 설치한 포획틀에 잡힌 야생 멧돼지. [뉴스1]

다만 이미 ASF가 발생한 지역의 엽사들은 광역수렵장에서 수렵할 수 없도록 막고 있어 몰래 포획에 나서지 않았다면 엽사에 의한 전파 가능성은 크지 않은 편이다.
 
정원화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질병대응팀장은 "과거 바이러스 양성 멧돼지와 싸움을 벌였던 엽견(사냥개)에게서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된 적이 한 차례 있었지만, 감염성은 없었고, 엽사들도 사냥 후 개를 소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산악지대 등에 멧돼지 폐사체가 있을 수 있지만, 발견을 못 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비슷한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확한 원인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광역 울타리가 뚫렸다면 큰일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지를 위한 광역울타리. 자료: 환경부

기존에 ASF가 퍼졌던 춘천과 이번에 폐사체가 발견된 영월 사이에는 치악산국립공원 등 산악지대가 있다.
북한강을 따라 설치한 광역 울타리가 뚫렸면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ASF 중앙사고수습본부도 4일 "접경지역 이외 전국 양돈농가로 ASF가 유입될 위험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5일 남쪽 경남도에서도 돼지 사육농가 주변에 울타리 설치를 지원하는 등 ASF 유입 방지를 위한 방역대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광역울타리. 자료:환경부

야생동물 전문가인 한상훈 박사는 "광역 울타리를 설치해 확산 속도를 늦추려고 노력은 했지만,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며 "이번에 방어선이 북한강에서 남한강으로 밀려났는데 더는 광역 울타리를 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광역 울타리를 설치했지만, 실제로는 멧돼지를 막기에는 허술하고, 오히려 다른 야생 동물 이동만 차단한 경우도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국장은 "지금까지 환경부의 멧돼지 포획에만 미뤄왔던 농림축산식품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축산농가 주변에 생석회를 뿌리는 등 방역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악취 등을 발생해 주민 기피 시설이 되면서 돼지 사육농가가 산기슭 등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멧돼지 출몰하는 산지와도 그 만큼 가까워 ASF를 막기 위해서는 울타리 설치가 시급한 편이다.
 
채찬희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멧돼지들이 자주 출몰한다면 매개 동물을 통해 사육 돼지에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며 "유럽 등의 사례를 보면 ASF 전파를 차단하려면 멧돼지 서식밀도를 지금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멧돼지는 번식력이 높기 때문에 숫자를 줄이고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한다면 3~5년 내 원상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대응 전략 전환 고민 중

강원 화천군의 한 양돈 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이 확인된 지난해 10월 9일 오전 해당 농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해당 농장 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선두 환경부 야생동물질병관리팀장은 "환경부도 농가 중심으로 대응 전략을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영월에서 폐사체가 발견된 것"이라며 "앞으로 농림부와 협의해 농가에 방역 울타리를 설치하고, 농가 외곽 지역에 대해서는 멧돼지 포획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농림부 구제역방역과 관계자도 "영동고속도로 남쪽까지 확산했다면 더는 동서 광역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광역 울타리 설치 지역과 아닌 지역 등 지역에 따라 탄력적인 대응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멧돼지는 유해조수로 분류된 만큼 지금보다는 포획을 훨씬 늘려 ㎢당 1마리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포획 강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국내에서는 멧돼지 포획이 ASF 차단에 효과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서식밀도도 정확히 잘 모른다"며 "지난 수십 년 동안 멧돼지가 생태계 균형을 이뤄왔는데 갑자기 대량 포획할 경우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도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ASF에 감염된 멧돼지는 영월지역 7마리를 포함해 모두 917마리가 확인됐다.
 
2019년 전국에서 10만819 마리의 멧돼지를 포획했고, 지난해에도 11월 말까지 8만6663마리를 잡아들였다.
2년 동안 대략 전국 멧돼지의 절반 정도를 잡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