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은 “내년에는 더 잘할 것이다”라고 후배를 향한 짙은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신진서는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단 한 번뿐이다. 하지만 그의 위상은 메이저 8회 우승의 커제 9단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한국은 신진서, 중국은 커제. 그래서 ‘신진서 대 커제 10번기’ 얘기가 들려온다. 한국기원은 찬성. 중국기원은 ‘잘해야 본전’이라며 미지근한 반응이라고 한다. 이런 화제 뒤로 또 다른 소식들도 있다.
승률 신기록에 바둑대상 5관왕
새해 부담 떨치고 승부를 즐겨야
월간바둑 신년호를 보니 남치형 초단(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의 은퇴 인터뷰가 실려있다. 제목은 ‘프로기사 종신제, 바꿔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동료의 기득권을 건드리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다. 남 교수는 30년 기사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한 이유에 대해 “스포츠에서 현역을 떠난 선수의 은퇴는 당연하다. 당장은 기사직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순환의 연속이다”라며 “이런 말을 떳떳하게 하려고 은퇴했다”고 말했다. 힘든 얘기를 했다. 그의 말이 숲에 던져진 씨앗 하나라도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한 시대가 간다.
바둑은 승부를 겨루는 도구이기에 바둑뉴스는 승부 얘기가 주를 이루지만 이곳에도 삶이 있고 골치 아픈 주제들도 많다. 신진서의 1선 클릭 사건, 아마 바둑대회 중단사태 등은 코로나와 관련 있다. AI 부정사건은 역설적으로 AI 시대의 도래를 알린다.
다시 승부로 돌아가면 한국 4위 변상일 9단이 중국 2위 양딩신 9단을 꺾고 TWT배 우승컵을 차지했다는 소식도 있다. 텐센트가 주최한 우승상금 1억2000만원의 국제대회로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치러졌다. 그 ‘익명’ 탓에 한국기원도 공식 보도자료를 내지 못했다. 좀 복잡한 얘기다.
21세가 된 신진서는 올해 어느 때보다 심한 부담감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게 됐다. 넘치는 기대에 부응하려면 세계대회서 우승해야 한다. 얼마 전 중국의 양딩신은 신진서를 꺾은 뒤 이런 말을 했다. “신진서는 AI 연구, 기억력, 계산력이 모두 나보다 낫다. 그런데 나와 둘 때마다 한 번의 전투로 끝내려는 경향이 있다. 왜 스스로 무너지는지 모르겠다.”
양딩신은 겨우 23세. 하지만 신진서의 급소를 치는 좋은 충고를 던지고 있다. 신진서는 고비를 맞았다. 세계 일인자로 나가는 운명적인 고비다. 그가 최강자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승부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필승, 의무, 책임, 목표 같은 단어는 뇌리에서 지워야 한다. 이 점은 잠시 정체를 보이는 여자 강자 최정 9단도 마찬가지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