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직후 태어난 송아지 2마리 무럭무럭" 남원 한우 농가 희망가

중앙일보

입력 2021.0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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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전북 남원시 송동면 김종화(60)씨 한우 축사에서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젖을 먹고 있다. 지난해 8월 폭우 때 만삭이던 이 어미 소는 당시 물에 떠내려 갔다가 구조된 지 2개월 만에 새끼를 낳았다. 연합뉴스

"지난해 폭우때 소 300마리 중 절반 잃어" 

 
"지난해 8월 물난리 때 만삭이던 암소에서 그해 9~11월 송아지 5마리가 태어났는데 이 중 2마리가 살아남았어요."

 
 전북 남원시 송동면에서 25년간 한우를 키워 온 김종화(60)씨는 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소는 수정 후 보통 285일 만에 태어나 2~3개월이 지나면 어미와 분리해 새끼가 먹는 사료를 먹이는데 지난해 가을에 난 놈(송아지)들은 덩치도 작고 성장도 더뎌 일부러 (젖을 먹이려고) 어미 밑에 붙여 놨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루에 사료 섭취량이 0.5㎏ 이상 돼야 스스로 사료를 먹고 크는데 이 정도를 먹지 못하면 영양 실조에 걸린다"면서다.

전북 남원서 25년간 한우 키운 김종화씨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된 뒤 김씨 농가에서는 송아지 5마리가 태어났다. 그해 9월 2마리, 10월 2마리, 11월 1마리 등이다. 하지만 이 중 3마리가 한두 달 만에 호흡기 질환 등을 앓다가 잇달아 죽었다. 김씨는 "어미 소들이 수해 때 스트레스를 받고 오염된 물을 먹어서인지 수해 이후 태어난 송아지는 크기가 작고 잘 크지 않았다. 면역력도 약했다"고 전했다.  
 
4일 전북 남원시 송동면 김종화(60)씨 농가에 있는 한우들이 여물을 먹고 있다. 이 소들은 지난해 8월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인근 농가 지붕과 둑, 산 등에서 구조됐다. 연합뉴스
김종화씨 한우 축사 1동이 텅 비어 있다. 지난해 8월 폭우 때 물에 잠기면서 축사 2동 중 1동 일부가 파손됐다. 연합뉴스
김종화씨가 키우는 소 엉덩이 등에 상처가 나 있다. 지난해 8월 폭우 때 축사가 물에 잠기면서 다친 흔적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수해 후 송아지 5마리 태어나 3마리 죽어

 
 반면 지난해 10월 13일에 태어난 수송아지 1마리와 11월 11일 태어난 암송아지 1마리 등 2마리는 용케 살아 남았다. 이들을 낳은 어미 소 2마리도 무사하다. 김씨는 "살아남은 송아지 2마리는 먹이도 잘 먹고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고 했다.
 
 당초 김씨는 축사 2동에서 한우 300마리를 키웠으나 지난해 8월 8일 남원에 4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져 축사가 잠기고 소 150마리가량이 죽거나 유실됐다고 한다.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피해가 커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소들 중에서도 다치거나 병든 소는 긴급 도축됐다. "한우(거세우 기준) 한 마리 평균 가격을 600만~700만원으로 잡고 폭우 때문에 망가진 축사와 기자재, 사료, 자동차까지 포함하면 10억원 정도 피해를 입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는 "수해 당시 소들이 축사와 농가 지붕 위로 피했다가 떨어져 죽기도 하고 일부는 강을 헤엄쳐 둑방이나 산 위로 올라가 있다가 구조됐다"며 "25일 만에 전남 곡성에서 포획해서 온 소도 있고, 산에서 마취총을 쏴 잡아 온 소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8월 9일 기록적인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하자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한 축사 위 지붕으로 소들이 물을 피해 올라가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8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김씨 "암소 3마리 출하…물난리 후 처음" 

 
 김씨에 따르면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송동면에는 김씨 농가를 포함해 한우 농가가 5가구 있다. 지난해 8월 집중 호우 때 마을 전체 소 약 750마리 중 300여 마리가 폐사했다고 한다. 남원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쏟아진 폭우로 전북 남원시·임실군·순창군, 전남 구례군·곡성군·광양시 등 6개 시·군 총 96개 마을이 물에 잠기고, 3849명의 이재민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물난리가 난 지난해는 김씨 인생 최대 고비였다. 그는 "그동안 IMF 외환 위기와 구제역을 겪고도 (소 사육 규모를) 수백 마리로 불리고 2녀 1남을 번듯하게 키웠다는 보람이 있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물난리를 겪고 나니 한동안 소를 키울 의욕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몇 달간 축사를 복구하고 소 대부분이 밥도 잘 먹고 건강을 회복한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우울해지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잡았다"며 "코로나19 여파로 다른 가축은 대부분 가격이 떨어졌는데 소 값은 안 떨어진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를 맞아 희소식도 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수해를 입은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내일(5일) 암소 3마리를 충북 음성 공판장에 출하한다"고 했다. 그는 "수해 이후 수익이 나는 건 처음"이라며 "소 판 돈으로 올해 (음력) 설을 쇨 계획"이라고 했다.
 
남원=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