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뎅은 1922년 이탈리아의 베니스 인근 트레비소에서 부유한 와인상의 아들로 태어나 2살 때 프랑스로 이주해 패션 디자이너이자 의류 사업가로 성공을 거뒀다. 스페인 출신의 파코라반(86)과 프랑스 출신의 앙드레 쿠레주(1923~2016년)와 더불어 60년대 미래주의 패션의 창안자로 평가받는다. 의류 사업가로서 그는 패션 프랜차이즈를 고안해 전 세계에 진출했으며, 6억 유로 이상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삶과 추억]
전설의 디자이너 98세로 별세
‘라이센스계 나폴레옹’으로 불려
파격적 색상으로 시대정신 창조
23세에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46년 크리스찬 디올에서패턴사로 일했고, 4년 후 자신의 패션 하우스 ‘피에르 가르뎅’을 열어 주로 연극 의상을 디자인했다. 53년 첫 여성 컬렉션을 선보였고, 그 뒤 그의 의상을 엘리자베스 테일러, 브리지트 바르도, 리타 헤이워드 등 당대의 유명 여배우가 입으면서 유명해졌다. 57년에는 남성복 부티크를 열어 화려한 넥타이와 프린트 셔츠 등을 선보였다. 영국 밴드 비틀스가 입은 옷깃 없는 수트를 만들고, 그레고리 펙 같은 유명 배우들의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는 기성복의 제왕으로도 불린다. 당시 맞춤복 위주로 흘러가던 파리 패션계에서 대중을 위한 기성복 디자인을 선보이는 혁신을 펼쳐, 파리 패션계의 엘리트주의에 충격을 줬다 70년대에는 브랜드 라이선스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피에르 가르뎅의 높은 브랜드 가치를 활용해 5대륙 140개 이상의 국가에서 판매되는 향수부터 펜, 담배, 재떨이, 자동차, 심지어 피클까지 다양한 물건에 피에르 가르뎅의 이름을 올렸다. 5~12%의 로열티를 받았던 피에르 가르뎅은 한때 ‘라이센스계의 나폴레옹’이라는 비공식적 칭호를 얻기도 했다. 자신의 디자인을 모스크바, 도쿄, 베이징으로 가져가 국제적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했으며, 프랑스가 글로벌 패션 제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유지연·임선영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