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뻔뻔하다" 공격에 박형준 "근거 없는 비난"…그 둘의 14년째 악연

중앙일보

입력 2020.12.27 17:39

수정 2020.12.2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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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한 홍준표 의원. 우상조 기자

 
“홍준표 의원과 한번 틀어지면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기억력도 좋고 집요하다. 누가 홍 의원과 대립하면 ‘안 싸우는 게 상책’이라고 말한다.”
 
지난 4ㆍ15 총선을 앞두고 홍 의원이 공천 문제로 당 지도부와 대립할 당시 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 의원이 최근 집중 공격 중인 사람은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형준 동아대 교수다. 포문을 연 건 23일이다. 페이스북에 “MB(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실세였던 사람이 부산시장 해보겠다고 나와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전직 두 대통령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한 것을 잘했다고 부화뇌동한다”며 “자숙하고 MB 면회나 열심히 다녀야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라고 적었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에선 김종인 위원장이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을 두고 잡음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박 교수를 콕 집어 공격한 것이다.


박 교수는 곧장 "사실에 기초한 비판이라면 정치 선배의 고언이라 여기고 달게 받겠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과하는 게 아니라, 보수 정권이 제대로 운영을 못해서 이런 무도한 이들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전 대통령께 여러 경로를 통해 인간적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보수의 큰 정치인인 홍 의원이 후배 책 잡는 일 하지 말고 보수 정권 재창출을 위해 구심이 돼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꼬집었다. 
 

홍준표 의원 SNS 캡처

 
그러나 홍 의원은 27일 다시 “그 좋던 총선 다 망치고 총선 망친 날 KBS 나가 유시민과 한껏 놀았다”며 “조용히 물러나 근신해야 함이 마땅한데도 부산시장 하겠다고 나섰다니 정치가 참으로 뻔뻔스럽다”고 글을 올렸다. 박 교수 측은 "총선 당일 KBS 출연은 기존에 계약이 돼있어 파기하기가 불가능해 당 지도부와 조율해 출연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공개적인 대응에 나서지는 않았다.
 
당 안팎에선 “아직도”란 말이 나온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둘 간의 갈등의 역사 때문이다. 먼저 회자되는 건 2006년 지방선거 경선이다. 당시 홍 의원은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에서 주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새정치수요모임 등 소장파는 홍 의원 대신 새로운 후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요모임 대표는 박 교수였고, 이들이 대안으로 내세운 건 정계를 떠나있던 오세훈 전 시장이었다. 박 교수와 홍 의원의 당시 발언이다.
 

2006년 4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오세훈, 맹형규 후보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박 교수=“언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유력 후보들이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외부인사 영입에 나서면 된다. 오 전 의원의 영입이 거론되니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각이 서기 시작한다.”
 
▶홍 의원=“외부인사 영입 얘기가 계속 나와서 힘든 몇 달을 보냈다. 지도부에서 후보들을 왜소화시키고 잘될 만하면 끌어내리는 일은 하지 않길 바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의원은 2004년 총선 공천 심사위원이었고, 박 교수는 공천을 받아 의원이 됐다. 박 교수가 대학 선배(고려대)인 홍 의원 대신 자신의 고교 후배(대일고)인 오 전 시장을 지원하자 홍 의원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홍 의원은 이날도 “부산 수영에 우리 당 공천을 줬더니 17대 국회의원이 됐다”고 당시를 거론했다.
 
두 사람의 다음 악연도 오 전 시장과 관련 있다. 2011년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 투표에 시장직을 걸 당시 홍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였고, 시장직 사퇴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곧장 시장직을 던졌다. 당시 사정을 아는 당 관계자는 “오 전 시장 사퇴는 홍준표 대표 체제의 붕괴를 부른 도화선이 됐다”며 “홍 의원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정권 실세로 통하던 박 교수가 오 전 시장을 박근혜 의원의 대선 대항마로 키우기 위해 시장직 사퇴를 독려한 거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 측 관계자는 “전혀 사실과 다른 오해”라며 “사퇴를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오 전 시장에게 물어봐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것이다. 다만 이 시기 둘의 관계가 더 꼬인 것은 분명하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지난 15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총선때도 두 사람은 불편한 구도를 형성했다. 홍 의원은 지도부와 공천 갈등 끝에 탈당했지만, 박 교수는 보수 통합을 주도하며 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핵심에서 총선을 지휘했다.
 
또 홍 의원의 공세는 과거의 악연 뿐 아니라 현실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대선을 준비하는 홍 의원 입장에선, 관계가 껄끄러운 박 교수가 부산시장이 될 경우 주요 지지 기반 중 하나인 부산을 잃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두 사람 악연이야 당에서 유명하지만, 개인 원한으로만 비판하는 건 아닐 것”이라며 “현재의 정치 지형을 고려해서 보면, 부산ㆍ경남을 포함한 영남의 패권과 관련된 문제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 당시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왼쪽)과 오세훈 당시 광진을 후보(가운데)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거전략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변선구 기자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