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사상 처음 16강에 진출했다. 그해 6월 14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1-0으로 꺾고, 2승 1무로 조 1위가 됐다. 온 국민과 축구대표팀은 목표 완수의 희열에 취해 그다음을 잊었다. 포르투갈전 다음 날인 15일, 전날 경기가 열렸던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대표팀 회복훈련 때다. 훈련장에 나타난 거스 히딩크 감독 주위로 취재진이 몰렸다. 귀를 쫑긋 세운 취재진을 향해 그는 말했다. “아임 스틸 헝그리.” 여전히 승리가 고프다는 그 말 한마디는 모두의 ‘뼈를 때렸’다. 한국 축구가 이탈리아를 잡고 8강에, 스페인을 넘어 4강에 진출한 원동력은 히딩크가 일깨운 배고픔이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운동하는 경우가 지금은 거의 없다. 대개 재능이 뛰어나거나, 그 스포츠가 좋아서 한다. 자녀에게 운동시키는 가정도 대부분 먹고살 만하다. 종목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제대로 운동을 시키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그런데 먹고살 만해야 운동하는 건 개인 차원에만 해당하는 모양이다. 경기단체 차원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연말연시 스포츠 경기단체장 선거가 한창이다. 17일 열린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서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회장에 당선됐다. 그가 누군가. 2010년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1인 시위하던 화물차 기사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뒤 ‘맷값’으로 2000만원을 줬던 인물이다. 1심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실형을 면했다. 영화 ‘베테랑’(2015년)의 소재가 됐다. 그는 아이스하키 전용시설 확충, 실업팀 창단 등 ‘돈 드는’ 공약을 내세워 경쟁 후보를 62대 20, 큰 표 차로 따돌렸다.
한국 아이스하키에 묻고 싶다. ‘맷값 폭행’ 당사자를 회장으로 모실 만큼 배가 고픈지. 아 유 스틸 헝그리?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