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자리 모두가 보는 데서 ‘헤드락’
그 날 회식에서 한 번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A씨는B씨에게 “이 X을 어떻게 해야 계속 붙잡을 수 있지. 머리끄덩이를 잡고 붙잡아야 하나”라고 말하며 양손으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었다. 피해자 두피에 A씨 손가락이 닿았다. “나랑 결혼하려고 결혼 안 하고 있다” 같은 말도 했다. 이후에는 “이X”“저X”같은 욕을 하며 B씨의 어깨를 계속 쳤다. 당시 회식자리에 있던 동료들은 “이러면 미투다” “사장님 왜 이러세요”라며 A씨를 말렸다. 결국 B씨는 회식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단순 ‘헤드락’이 문제 아냐… “추행”
김 판사는 “A씨가 B씨를 접촉한 부위가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더라도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접촉의 경위나 방법, 두 사람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일반인의 시각에서 A씨의 행위가 단순히 회사 대표가 직원에 대한 애정과 섭섭함을 격하게 표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A씨의 행동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추행에 해당하고, 설사 A씨에게 성적 욕구를 자극하려는 주관적 목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취지다. 특히 1심은 ‘헤드락’ 하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계속 A씨를 만류한 점, 2차로 자리를 옮겨서 A씨가 B씨에게 다가오자 주변인들이 떼어놓으려 한 점 등을 두루 살폈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성적 의도 없고, 성적 수치심 느끼지도 않아 “무죄”
2심은 ▶사건 장소가 개방된 공개적인 장소였던 점 ▶어깨나 머리는 부위 자체로 성과 관련된 특정 신체 부위라고 보긴 어려운 점 ▶A씨의 헤드락 등은 폭행이 될 수 있을지언정, 성적 의도를 가진 행위로는 보기 어려운 점 ▶“이X을 어떻게 해야 붙잡을 수 있지” 등의 말은 B씨에게 연봉협상 등 회사 근무 이야기를 하며 나온 것인 점 ▶B씨는 사건 직후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 수치심 불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는데 성적 수치심을 명확하게 감지해 진술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A씨의 언동이 B씨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추행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성적 의도’ 성행위 관련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접촉 신체 부위에 관해서도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 목과 피고인 팔이 닿았고, 피해자 머리가 피고인 가슴에 닿았다. 대법원은 “접촉부위나 방법을 보면 객관적으로 일반인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행위”라고 했다. 덧붙여 이 행동 전후의 A씨의 말도 문제가 됐다. “나랑 결혼하려고 결혼 안 하고 있다”“이X 머리끄덩이를 잡아 붙잡아야겠다” 등의 말에 주변 여성 직원들은 항의했다. 대법원은 “A씨의 말과 행동은 피해자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A씨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줬다”며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라고 평가했다.
A씨의 행위를 ‘폭행’으로 볼 지 ‘추행’으로 볼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한 건 ‘성적 의도’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이었다. 대법원은 “성행위(성관계ㆍ스킨십)와 관련된 행위만 성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피해자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피고인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도 ‘성적 의도를 갖고 한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이 과정에서 ‘소름 끼쳤다’‘모멸감’‘불쾌감’을 느꼈다고 한 것도 성적 수치심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