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문 전사’ ‘친문 후계’로 몸집 키워 대선 격돌!
검찰개혁 완수한 추미애, ‘노무현 탄핵’ 원죄 털고 대권 리더십 입증
검사징계법상 감봉 이상의 징계는 법무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재가하면 확정된다. 이날 추미애 장관의 징계 제청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징계를 재가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징계위가 열린 15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검찰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물을 길도 없는 성역이 되어 왔다는 국민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은 징계가 확정되자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했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정밀분석
작심하고 밀어붙인 추미애의 ‘윤석열 제거 작전’
우선 2018년 11월 언론사 사주를 만난 것을 “사건 관계자와의 부적절한 교류”라고 규정했다. 조국 사건 등 재판부 개인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만들어 반부패강력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해 재판부를 불법사찰한 의혹이 있다고 했다. 또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한 대검 감찰부의 감찰을 중단하도록 지시하고,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감찰을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로 이첩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감찰을 방해한 혐의도 있다. 한동훈 검사장 감찰 관련 정보를 외부에 유출했고, 대면 감찰 요구를 4차례 불응해 감찰을 방해했다고도 했다. 압권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추 장관은 “대검 국정감사에서 정치 참여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했다”고 징계 사유로 내놨다. ‘정치하지 않겠다’는 말을 안 했으니 정치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추 장관은 2020년 11월 24일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가진 윤 총장의 직무집행 정지와 징계 청구에 관한 브리핑에서 “법무부 감찰 결과 확인된 검찰총장의 비위 혐의가 매우 심각하고 중대하다”며 “감찰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추 장관의 직무정지 명령도 서울행정법원이 12월 1일 윤 총장이 신청한 직무정지 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힘을 잃었다. 검사징계위 구성을 두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검사징계위원장인 추 장관을 대신해 위원장 직무대리 역할을 해야 할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자진사퇴한 뒤 후임으로 임명된 이용구 차관은 임명 직전까지 검찰이 수사 중인 월성 원전 1호기 평가 조작 의혹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백운균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를 맡고 있었다. 심재철 검찰국장은 징계 사유 중 하나인 ‘판사 사찰’ 문건의 제보자로 지목돼 스스로 회피 신청하고 징계위에서 빠졌다.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채널A와 한동훈 검사장의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서 형사 피의자로 관련돼 있다.
윤석열의 운명 가른 4인의 검사징계위원회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교류’와 윤 총장 자신에 대한 감찰 협조 의무 위반은 징계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불문(不問) 결정했다. 채널A 사건 감찰 관련 정보 유출과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감찰 방해 사유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결정했다. 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작성 및 배포,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채널A 사건 관련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은 징계 사유가 인정된다고 봤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심의를 마친 뒤 “위원회가 여러 측면,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걸 생각하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당초에 윤 총장의 징계 수준을 해임으로 보는 전망이 많았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임명권만 있기 때문에, 그를 해임하려면 합당한 징계 절차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윤 총장의 징계위 회부를 준비해왔다는 점에서 그를 총장직에서 쫓아낼 명분을 쌓는 수순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여론 악화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추-윤 갈등 장기화로 피로감이 누적되자 정부가 사활을 건 검찰개혁 전반에 부정 여론이 높아졌다. 1년여 전인 2019년 10월만 해도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는 여론이 51.4%로 반대(41.2%)를 앞섰다(리얼미터 조사 YTN 의뢰). 하지만 공수처 개정안을 처리한 직후인 12월 14일 같은 업체가 실시한 조사에서 공수처 개정안 처리를 ‘잘못된 일’이라고 한 응답자가 54.2%, ‘잘된 일’이란 응답은 39.6%로 역전됐다. 게다가 12월 들어 문 대통령 지지율은 ‘콘크리트’라고 여겼던 40%가 무너지며 정권 출범 후 최저치로 내려갔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 A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적으로는 윤석열을 무리하게 해임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다. 자칫 보궐선거에서 발목을 잡히고 차기 정권 재창출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정직 수준으로도 윤 총장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A 의원의 말처럼 윤 총장은 검찰 안에서도 고립무원의 상태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특수부 후배들은 한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윤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참모진과 주요 사건을 담당하는 주요 검찰청에는 이른바 ‘추미애 라인’이 포진해 있다.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지만,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에 여론의 도움을 직접 구하기도 불가능하다. 결국 윤 총장이 기댈 최후 보루는 법과 원칙이지만, 징계 과정에서 보였듯이 절차와 명분은 권력의 의도로 얼마든지 바꾸고 포장할 수 있다.
제거당한 윤석열, 정치에 사활이 걸렸다
윤 총장의 정치활동 가능성도 여당의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윤 총장이 ‘정치 불참’을 확실히 밝히지 않은 것을 징계 사유로 댈 만큼 여권에서 윤 총장의 정치 참여 가능성은 경계 대상 1호다. 여권에서 그가 정치할 생각을 가졌다고 의심하는 이유는 근거가 전혀 없진 않다. 실제로 2019년 7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윤 총장은 “정치에 소질도 없고, 정치할 생각 없다”고 선을 그었다. 1년 뒤 국감에서 정치활동 여부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정치권에선 윤 총장의 정치 활동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윤석열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이 정권이 그가 정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길로 내몰렸다”고 했고,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이 앞으로 정치를 안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정치에 윤 총장의 사활이 걸린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 정치를 하게 만든 건 그의 권력 의지가 아니라 친노 세력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 총장도 마찬가지로 그의 권력 의지가 아니라 정권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정치에 나서게 할 동력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의 해석이다.
다만 윤 총장이 정치하기로 결심한다 해도 과정이 순탄하진 않으리란 분석이 많다. 우선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으로 윤 총장이 거론된다. 공수처장과 공수처 검사 등 임명 절차를 고려하면 출범 시기는 2월쯤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2월까지 윤 총장을 정직 상태로 묶어둔 뒤 공수처가 출범해 그를 첫 수사 대상으로 삼는다면, 적어도 7월 퇴임 때까지 식물 총장 상태로 발을 묶어두거나 다시 직무를 정지하는 등 여러 가지 수를 노려볼 수 있다.
윤 총장의 대선 출마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반격의 여지를 막는 방법도 여권에서 공감대를 키우고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현직 법관과 검사가 공직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로부터 1년 전에 사직해야 한다는 내용의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법이 개정되면 7월에 임기가 끝나는 윤 총장은 2022년 3월에 치러지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판사 출신으로 21대 총선 14개월 전에 사직하고 출마한 이탄희 민주당 의원도 “이 법의 핵심은 ‘판사가 재판으로 정치한다’, ‘검사가 수사로 정치한다’는 국민의 불신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이 경우에도 윤 총장이 3월 이전에 사퇴한다면 대권 도전은 가능해진다. 임기를 채우더라도 윤 총장이 직접 출마 대신 반문 연대의 핵심 멤버로 합류해 ‘킹메이커’ 역할을 맡는 방법도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 더 반기는 시나리오다. 국민의힘의 한 원외 인사는 “내년 대선은 정권심판론보다 더 큰 명분이 있을 수 없다. 윤 총장이 꼭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더라도 보수 재건과 반문 연대에 힘을 보탠다면, 중도 민심에 끼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의 핍박을 받는 순교자’ 이미지를 입은 윤석열이 참여하는 야권의 ‘빅 텐트’ 위력은 상당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어 보인다.
검찰개혁 과업 완수한 추미애, 대권행 티켓 얻었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을 완성함으로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가담했던 원죄를 말끔히 씻게 됐다. 또 좌고우면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과 돌파력을 입증했다. 친문 진영의 지지와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때 윤 총장과 동반 퇴진해야 한다는 여권 일부의 주장은 쏙 들어갔다. 복잡한 출구 전략을 찾아야 할 처지인 윤 총장과 달리 추 장관의 출구는 적어도 민주당 입장에선 ‘명예로운 꽃길’이 펼쳐진 셈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선 추 장관의 대권 도전을 당연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추 장관은 11월 16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서울시장이나 대선 출마 의향이 있느냐”는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의 물음에 “법무부 장관으로서 오직 검찰개혁에 사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그 일이 마쳐지기 전까지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장관직을 그만둔 뒤의 진로에 대해선 “그거야 알 수 없고, 검찰 개혁이 완수될 때까지는”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민주당 안에서도 추 장관의 대권 도전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본선 경쟁력을 제쳐놓고 추 장관이 나온다면 경선 흥행의 한 요소가 될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민주당 대권 구도는 이낙연 당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양강을 형성하고 있다. 김부겸·김두관·임종석·이인영 등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군의 경쟁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에 대중적으로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한 추 장관이 나서면 컨벤션 효과가 극대화할 것이란 게 그의 분석이다.
비문 계열의 민주당 내 한 정책통은 “추 장관은 인물 가뭄을 겪고 있는 친문의 대표 주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의 고향은 대구다. 정치적으로는 25년간 서울(광진구을)에서 5선을 지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입해 정계에 진출했다. 친노의 앙금도 이번에 말끔히 털었다. 그의 분석이 이어졌다. “추 장관은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의 강점을 모두 갖췄다. 두 사람의 약점으로 꼽히는 확장성과 친문의 지지 기반도 확보할 수 있는 위치다. 강한 지도자 이미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이 정도 스펙을 가졌는데 대권 도전을 누가 마다하겠나.”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