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공동모금회, 전화벨 기다리는 사연
대구 키다리 아저씨에 대해 알려진 것은 60대 나이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뿐이다. 그는 매년 대구공동모금회에 전화를 걸어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주렵니까?. 잠시 사무실 앞에 나와보소. 식당으로 나와보소"라고 한다. 그러곤 모금회 직원을 보면 거액의 수표가 든 봉투 한장을 내민다. 대구공동모금회 직원들이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이유다.
대구 키다리아저씨, 매년 익명 기부
22일~24일 사이 등장해 거액 건네
키다리 아줌마의 익명 기부도 화제
작년엔 ‘금액이 적어서 미안합니다. 나누다 보니 그래요’라고 적힌 메모 한장과 2300여만원 상당의 수표가 든 봉투를 냈다. 8년 동안 9차례에 걸쳐 기부한 돈이 모두 9억8000여만원이다.
그는 대구공동모금회 측이 제안한 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가입도, 감사 표창도 거절했다. 공동모금회 직원들은 "도무지 표를 낼만도 한데, 이웃만 도우려고 한다"고 했다. 김찬희 대구공동모금회 기부담당은 "코로나를 뚫고 올해도 23일이나 24일 중에 꼭 오실 거라 믿는다. 모든 직원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13년 1월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시 등산복 같은 편한 차림으로 대구공동모금회 사무실을 찾았다. 그러곤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면서 주머니에서 현금 10만원을 내놨다. 누군지 묻지 말아 달라면서다. 그는 "매월 첫째 날 찾아와서 준비한 기부금을 계속 내겠다"고 약속하곤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키다리 아줌마는 이 약속을 7년간, 이달 초까지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매월 첫째 날 모금회 사무실을 찾아와 10만원, 20만원, 30만원, 40만원, 60만원 등 금액을 계속 올리며 기부하고 돌아갔다. 연말로 가면 갈수록 기부 금액을 늘리면서다.
지금까지 그가 낸 기부금은 3000여만원. 전액 어려운 이웃들의 난방비, 부식비 등에 쓰이고 있다. 대구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익명의 기부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나이가 많은데, 아직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그러니 이웃들과 조금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