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끝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end)도 아닙니다. 차라리 시작의 끝(the end of the beginning)일 겁니다.”
간신히 거둔 승리에 도취할까 ‘이제 막 전쟁이 시작된 것일 뿐’이라는 경계의 의미로 한 이야기였다. 실제 이후 1년 반 이상 전투는 더 치열했고 사상자도 쏟아졌다. 전기가 마련된 건 1944년 6월 6일 D-데이였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면서 비로소 ‘끝의 시작’이 보였다.
지난주 미정부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젝트 ‘초고속 작전’팀의 최고운영책임자인 구스타브 퍼나는 화이자 백신의 배포를 시작하며 이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했다. “D-데이는 2차 대전에서 ‘끝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면서 “오늘이 바로 그날”이라고 했다.
여러모로 코로나19 사태는 2차 대전과 자주 겹쳐졌다. 미국 내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30만 명에 이르자, 미국 사회는 2차 대전 미군 전사자 수(29만1500명)를 넘었다며 충격에 빠졌다. 언론에선 최근 연일 3000명을 넘고 있는 하루 사망자 수를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날 사망한 미군 수 2500명에 비교한다.
하지만 그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노르망디 작전을 계기로 전쟁이 끝나고 전 세계에 평화가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소득 수준에 따라, 방역 전략에 따라 지금 각 나라가 확보한 백신 분량은 천차만별이다.
미국에선 두번째로 승인이 난 모더나 백신이 배포됐다. 내년 2월부터 일반인에 대한 접종을 시작하면 5~6월 사이에는 집단 면역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듀크대 연구에 따르면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지구상 나머지 수십 억명이 집단면역을 이루는 시기는 2023년, 심지어 2024년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D-데이가 지났지만 모두가 ‘끝의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시작의 끝’인 나라도, 어쩌면 여전히 시작일 뿐인 나라도 있다.
김필규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