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백신 쟁여놓은 선진국…불확실해 못샀다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0.12.18 19:17

수정 2020.12.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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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한 간호사가 첫번째로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방역 전쟁을 벌이던 세계 각국이 '제2라운드'인 백신 접종전에 본격 돌입했다. 
 
백신 접종전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방역전보다 국가별 명암이 더 뚜렷이 갈린다. 백신을 넉넉히 확보한 나라일수록 접종도 빠르게 시작, '면역'에 이르게 되는 예상 시점도 빠르다. 문제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출발이 늦은 국가가 격차를 따라잡기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라는 점이다.

영국·미국·캐나다 이어 EU, 이스라엘 연내 접종
화이자는 일본서 사용 신청, '특례 승인' 검토
10개국은 인구수 넘는 백신 확보…한국은 못미쳐
'선두그룹' 다양한 백신 구매로 불확실성 줄여
출발 늦은 한국은 "유효성, 안정성 불확실해서…"

대열의 선두에 자리 잡은 건 이미 백신 접종에 들어간 미국·영국·캐나다, 연내 접종 목표인 EU(유럽연합)·이스라엘·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이미 자국민을 모두 접종하고도 남을 백신을 확보한 상태라는 것이다.
 
미 듀크대학교와 유니세프, 과학 분석회사인 에어피니티가 분석한 백신 계약 관련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인구 수보다 많은 백신 물량을 확보한 나라는 캐나다, 미국, 영국, EU, 호주, 칠레, 이스라엘, 뉴질랜드, 홍콩, 일본 등 10개국이다. EU는 인구 대비 2배, 미국과 영국은 4배 이상, 캐나다는 무려 6배에 달하는 백신 물량을 계약했다.
 
반면 고소득 국가(high-income) 중 한국과 스위스, 쿠웨이트, 대만, 이탈리아 등은 백신 확보 물량이 인구에 미치지 못한다.


백신 추가 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현재의 격차가 극복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세계 인구 중 15%를 차지하고 있는 부자 나라들이 13개 유력 개발사가 내년 말까지 생산할 예정인 백신중 절반 이상(51%)을 이미 사전 주문했다고 전했다.
 
NYT는 "미국에 이어 부국들이 백신 확보전에 가세하면서 많은 나라가 적절한 시기에 백신을 도입하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영국·EU 주요 선진국 입도선매 완료

지난 14일(현지시간) 접종을 시작한 미국은 이미 지난 여름부터 백신을 입도선매해왔다. 화이자로부터 1억 회분을 우선 확보했고, 5억 회분을 추가로 구매할 수 있는 옵션도 걸어놨다.
 
18일(현지시간) 긴급 승인된 모더나 백신은 지난 7월 내년 1분기까지 1억 회분을 공급받기로 계약한 데 이어 지난주에는 추가로 1억 회분을 구매해 내년 2분기에 공급받기로 했다.
 
이 외에도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 사노피 등을 합쳐 8억 1000만 회분을 선주문한 미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전체 인구(약 3억3000만 명)의 절반가량인 1억 5000만 명이 접종을 마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보다 이른 8일(현지시간) 접종을 시작한 영국은 총 3억 57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했다. 총 7종의 백신을 확보한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억 회분, 노바백스, 사노피, 프랑스 제약사 발네바가 만들고 있는 백신을 각각 6000만 회분 확보한 상태다.
 
EU도 주요 백신 회사인 화이자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외에도 독일 큐어백으로부터 13억 회분을 확보했다. 필요하면 6억6000만 회분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화이자 백신의 승인이 나면 EU는 27일부터 각 회원국에 백신을 동시다발로 공급할 계획이다.
 
캐나다도 넉넉한 물량을 확보한 것은 물론 종류도 7가지로 다양하게 갖췄다. 임상 3상 결과가 나온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물론이고, 3상을 진행 중이거나 앞둔 얀센·사노피(프랑스)·메디카고(캐나다)·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도 샀다.
 
'백신 과잉 구매'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어떤 백신이 더 효과적인지, 어떤 백신이 먼저 도착하는지에 상관없이 국민에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전 국민에 백신을 무료 접종한다.

주요국 코로나 백신 확보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처럼 선진국들이 일찌감치 백신 확보에 나선 이유로 드는 건 '불확실성'이다. 어떤 백신이 효과가 있고 부작용이 적을지, 또 한 번 접종으로 면역 상태가 지속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충분하고 다양한 백신을 확보해 위험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레그 헌트 호주 보건부 장관은 "호주는 '백신 포트폴리오'를 mRNA(화이자), 바이러스 벡터(아스트라제네카), 단백질 재조합(노바백스)으로 짰다"고 설명했다.
 
미 듀크대 크리슈나 우다야쿠다르 박사는 "만약 코로나19 백신이 독감 예방주사처럼 매년 접종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백신의 수요 공급 관련) 모든 예상치는 뒤집힐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이런 불확실성을 백신 구매를 망설인 이유로 들고 있다. 18일 브리핑에서 정부 관계자는 백신 도입이 너무 늦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개발 완료 전에 유효성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백신을 불가피하게 선구매해야 하는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구매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동, 일본도 접종 속도전 

일본은 화이자 백신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각각 1억 2000만 회분, 모더나 백신을 5000만 회분 확보해 총 2억 9000만 회분을 내년 상반기까지 공급받기로 했다. 이는 1억2700만 명인 전체 인구를 모두 접종하고도 남는 분량이다. 지난 8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내년 상반기까지 전 국민 접종 분량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화이자는 18일 일본 내 임상시험을 마무리하면서 긴급 사용 승인을 신청했다. 이른바 ‘특례 승인'을 적용해 백신 검토 절차가 대폭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는 지난 14일 인터뷰에서 백신 개발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내년 도쿄올림픽 개최에 희망의 빛이 보인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중국도 화이자 백신을 1억 회분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시노팜 등 자국 제약사들이 개발한 백신을 활용해 내년 2월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 전 일반인들에게 접종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과 중남미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19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화이자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 연내에 소규모 1차분을 넘겨받아 접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은 14일부터 중국의 시노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외 말레이시아·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도 이달 내 접종 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연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들어가는 나라는 30여개 국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 "화이자 연내 계약 목표…모더나는 내년 1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8일 온라인 정례 브리핑에서 이달 안에 존슨앤존슨-얀센과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위한 계약을 추진하고, 내년 1월 모더나 백신 계약 체결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세 회사 백신의 구체적인 공급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보건복지부 대변인)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 19 중대본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해외에서 도입하기로 한 총 4400만명분의 코로나 백신 가운데 코백스 1000만명분의 신속한 도입을 위해 협상 중”이라며 “내년 1월 중 구체적인 물량과 제공 시기 등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가장 빨리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 건 이미 계약을 마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정부는 내년 2~3월 중 도입을 예상한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임상 3상 결과에 대한 논란으로 추가 임상 시험에 들어가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이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