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대북전단금지법’이라 불리는 남북관계발전법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4번째 토론자로 나선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9시쯤 한 말이다. 이날 필리버스터 종결 투표가 오후 8시 52분으로 예정돼 있던 터라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이 언제든 투표를 개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의장은 토론을 마무리하려는 이 의원에게 수차례 “3분이 남았다” “조금 더 하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은 오후 8시 52분에서 17분 지난 9시 9분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이 의원의 토론이 마무리되자, 박 의장은 “교섭 단체 협의에 따라 마지막으로 주호영 대표에게 30분간 토론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에선 반발이 터져나왔다. 상당수 의원은 필리버스터 막판 막후 협상을 알지 못했다.
주호영 손 들자…“연락 채널 중단”
국민의힘은 이날 낮부터 민주당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김태년 원내대표도 김영진 원내수석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주 원내대표가 직접 토론에 나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과의 연락 채널이 완전히 두절됐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면서 “발언 시간을 30분 얻는데 이렇게 힘들어, 필리버스터를 할지 말지 참으로 참담스럽다”고 말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날 오후 3시 35분쯤 연단에 오른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토론을 5시간 넘게 이어가자,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주 원내대표 마지막 토론을 봉쇄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오후 7시쯤 박 의장을 찾아 “주호영 원내대표가 연설해야 한다, 제발 두세시간이라도 달라”고 요청했다.
박병석 “마지막 발언권은 야당에”
고민하던 박 의장에게 아이디어를 준 건 충청권의 한 야당 중진이었다. “토론을 1시간만 하고, 종결 표결은 예정대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박 의장은 민주당 설득에 나섰다. 김태년·주호영 원내대표를 3차례나 불러 얘기했고, 특히 김 원내대표에게 “마지막 발언 기회를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줘서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 시간을 1시간→40분→30분으로 축소하는 과정도 이어졌다.
결국 연단에 오른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 의석을 바라보며 “180석 힘으로 무슨 법이든 밀어붙이고 통과시키니 시원하냐.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처럼 의기양양하냐”고 쏘아붙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선 “박근혜 정부보다 나은 정부를 만들어달라는 국민의 희망을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토론을 26분 만에 끝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