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달력 낭인

중앙일보

입력 2020.12.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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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스포츠팀장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어람(御覽)하고 반사(頒賜)할 내년 역서(曆書)를 임금께 올린다. 상품은 황장력(黃粧曆)이고, 그다음은 청장력(靑粧曆), 백력(白曆), 중력(中曆), 월력(月曆), 상력(常曆) 등이 종이 품질과 장정 모양으로 구별한다. 서울의 각 관청은 미리 종이를 마련했다가 관상감에 맡겨 인쇄해, 장관(長官)과 관료들에게 차등을 둬 분배하여, 각기 고향과 이웃 친지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게 한다. 이조(吏曹)의 서리(胥吏)는 벼슬을 많이 낸 여러 진신가(搢紳家) 중에서 주인으로 삼은 집에 역서를 나눠주는데, 초임 이상으로서 이조 전랑에 속한 자에게는 관례에 따라 청장력을 한 건씩 증정한다.”
 
조선 순조 19년(1819년), 학자 김매순(1776∼1840)은 열량(한양)의 연중 풍속(행사) 80가지를 기록한 책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를 펴냈다. 책에 음력 11월 동지(冬至) 풍습을 위와 같이 적었다. 지금의 달력에 해당하는 역서를 ‘동지책력(冬至冊曆)’, 임금이 이를 하사하는 걸 ‘책력반사(冊曆頒賜)’라 불렀다. 당시 달력은 장정한 책(冊)의 형태라서 책력이라 했다. 한반도는 삼국시대 이래 중국 역법을 썼다. 세종 24년(1442년) 조선과 중국의 위치 차이에 따른 오차를 개선한 새 역법 책 『칠정산 내편』과 『칠정산 외편』이 발간됐다. 독자적 역법을 쓰게 됐다. 조선 초 1만부였던 동지책력은 조선 말 30만부에 이른다. 이처럼 달력은 나누는 게 전통이다.
 
“연말을 맞아 각 기업의 캘린더 발행이 예년보다 보름 정도 앞당겨지고 있고 부수도 훨씬 늘어나 신년 캘린더가 풍성해질 듯.”(1978년 11월 13일자 D일보) “경기 호황을 반영, 대기업들이 내년도 달력 제작 부수를 올해보다 10~20%씩 늘려잡고 있어 연말 달력 인심이 후해질 듯.”(1986년 9월 4일자 K신문)
 
전에는 이렇게 흔했던, 그래서 골라 썼던 게 달력인데, 요즘은 씨가 말랐다. 스마트폰에도 달력이 있고 날짜가 나오지만, 집집마다 종이달력 한두 개는 필요하다. 요즘 달력 인심이 야박하다. 공짜 달력을 찾아 은행 등을 떠도는 ‘달력 낭인’까지 등장했다. 달력 구매도 늘었다. 온라인 판매(G마켓)의 경우 지난해보다 22%, 3년 전보다 93% 늘었다고 한다. 어렵게 한 부 구한 달력을 훑어봤다. 내년(2021년) 공휴일은 총 64일이고, 연휴는 설날 4일, 추석 5일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