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폭주와 윤석열 징계 정국에서
권력의 속성은 내가 하면 독재가 좋고, 남이 하면 민주가 좋은 게 인지상정이다. 누구든 권력을 잡으면 독재의 유혹에 빠진다.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의 위기들』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유령이 전 세계에 떠돌고 있다면서 ‘민주 정권’이 법적 장치를 반민주적 목적에 이용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자기 정체성 집착 순간 몰락 시작
현 정권은 ‘공수처’가 촉발할 수도
박근혜·트럼프에서 교훈 못 얻어
문 대통령, 그 길 그대로 갈 건가
경쟁자를 ‘죽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가 다시 찾아왔다지만 정말 죽일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파시즘이나 나치즘, 혹은 군사 쿠데타와 같이 물리력을 동원해 죽일 수 없다면 ‘연성 독재’는 결국은 선거에 ‘져서’ 쫓겨날 것이다. 트럼피즘은 남겠지만 트럼프는 사라질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표현대로 “미국 민주주의는 재앙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AP통신 분석에 따르면 4년 전 트럼프를 찍었다가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을 찍은 ‘스윙 보터’ 6%가 비정상이 정상이 돼버린 뉴노멀(?)을 깨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복원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박근혜와 트럼프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자기 정체성’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순간 몰락이 시작된다. ‘국정 교과서’와 ‘백인 우월주의’가 박근혜와 트럼프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듯 문재인 정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수처’가 몰락을 촉발할 수 있다. 야당의 비토권을 수없이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한 번도 시행해보지도 않고) 야당의 비토권을 빼앗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민주주의를 위한 검찰개혁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주주의 없이 검찰개혁도 없습니다.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때 공수처의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의 핵심으로 여겨졌던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은 최초의 준법자는 입법자인 국회여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합니다”라며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과 특수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사정·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부패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며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감회가 깊다는 소회를 밝혔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라는 대목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 외국 속담대로 검찰개혁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한국리서치를 포함한 네 개의 여론조사 기관이 공동으로 조사한 12월 첫 주 ‘전국지표조사’를 보면 “정부와 여당의 검찰개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다’ 28%,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진 것 같다’ 55%로 부정적 응답이 두 배 많았다. 중도에서는 26% 대 58%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 긍정 평가자조차 겨우 50%만 검찰개혁을 긍정 평가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런 민심을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의 치명적 약점이다. 탈원전이나 지소미아 같은 (대중이 판단하기 어려운) 전문 영역은 여론조사를 들이밀면서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인사나 검찰개혁 이슈에 대한 여론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한다. 민심에 반응하지 않으니 민심은 계속 나빠진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긍정 38%, 부정 54%로 긍정·부정 모두 집권 후 최저와 최고를 기록했다. 중도는 34% 대 58%였다. 보궐 선거가 있는 서울은 37% 대 58%, 부울경은 34% 대 56%였다.
정치 컨설턴트로서 오랫동안 (캠페인 전략을 위한) 민심 분석을 업으로 해 온 경험으로 볼 때 35%와 55%는 중요한 수치다. 가령 ‘정권교체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과 ‘야당이 대안인가?’라는 두 질문에 동의한다는 여론이 모두 55%를 넘으면 정권은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총선을 일주일 앞둔 4월 7~8일에 한국일보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서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야당 심판론) 57.3%, ‘정부 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여당 심판론) 32.4%였다. 총선 결과가 예견된 수치였다.
55%는 중도를 얻었다는 뜻이고, 35%는 중도를 잃었다는 뜻이다. 11월 마지막 주 갤럽 조사에서는 내년 보궐선거에서 ‘정부 지원 위해 여당 당선’ 36%, ‘정부 견제 위해 야당 당선’ 50%였는데, 서울은 29% 대 57%, 부울경은 29% 대 56%였다. 모든 수치가 총선 때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경고등이 켜졌다. 신호를 무시하고 폭주하면 참사가 기다릴 뿐이다.
게다가 5월에는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서 85%가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대 확산이 시작된 지난주에는 56%까지 떨어졌다. 공포의 확산을 막지 못하면 가장 낮았던 2월 넷째 주의 41%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부동산 대책에 대한 부정 평가는 60%를 넘은 지 이미 오래다.
경영전략가인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강하고 능력 있는 기업의 몰락을 5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는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4단계는 (공포와 절망 속에)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5단계는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다. 한국의 보수는 4단계에 있고, 민주당은 3단계에 있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당도 ‘자기 정체성’만으로는 집권할 수가 없기 때문에 (중도를 잡기 위한) ‘선거 연합’을 할 수밖에 없다. 이긴 뒤에는 선거 연합을 뛰어넘는 ‘통치 연합’을 해야만 업적을 남길 수 있지만 (3당 합당을 결단한) 노태우를 빼고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뒤의 모든 대통령은 ‘선거 연합’을 깨고 ‘정체성’으로 돌아가면서 위기에 빠졌다. 정치는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예외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정체성의 늪에 빠졌다. 민심의 경고등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해임’이라는 가속 페달을 밟는다면 35%와 55%의 임계점을 위아래로 넘으면서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긴급조치’나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면 민심에 따라 생각을 바꾸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근혜와 트럼프의 몰락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도 그 길을 그대로 밟을 것이다. 민심을 이긴 정권은 없다.
박성민 정치 컨설팅그룹 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