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 난 아우디서 100㎏ 운전자 구한 경찰 "괴력 나오더라"

중앙일보

입력 2020.12.02 11:31

수정 2020.12.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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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라는 직업의식 때문에 몸이 먼저 반응했을 뿐입니다.”
 1일 밤 부산 강서구 명지동의 한 도로에서 불이 난 아우디 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자를 구조한 박강학 강서경찰서 민원실장(경감·57)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 실장은 1일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오후 10시41분 경찰서 문을 나섰다.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경찰서 앞 사거리 쪽으로 나오자마자 길 건너편에 전복된 아우디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 엔진에서 기름이 흘러나왔고, 엔진 쪽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박 실장은 곧바로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있던 소형 소화기를 들고 아우디 차량으로 뛰어갔다. 경찰서 문을 나선 지 5분 만인 오후 10시 46분이었다.

1일 오후 10시 46분 부산 강서구 명지동 강서경찰서 인근 도로에서 전복된 차량에 불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 부산경찰청

 박 실장은 불이 난 차량 엔진을 향해 소화기를 뿌려댔지만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불이 점점 더 번져갔다. 박 실장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차 안을 들여다봤다. 뒤집힌 차량 운전석 쪽에 운전자의 발이 보였고 운전자의 몸과 얼굴은 조수석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박 실장은 운전석 문을 열었지만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있는 힘껏 문을 당기자 10㎝가량 문이 열렸다. 박 실장은 그 틈으로 발을 집어넣어 운전석 문을 차기 시작했다. 문을 박살 낸 박 실장은 곧바로 운전자의 발을 붙잡고 차량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박강학 강서경찰서 민원실장 1일 퇴근길에 불난 차량 발견
100㎏ 넘는 운전자 괴력으로 끄집어 내자 10초 뒤 차량 ‘펑’
박 실장 “경찰이라는 직업의식 때문에 바로 뛰어들었다”

 40대 운전자는 몸무게가 100㎏이 넘는 거구였다. 약 20년간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다져온 박 실장이었지만 100㎏이 넘는 운전자를 끄집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박 실장은 “차량 엔진에 불이 커지는 게 보이는 순간 괴력이 나오더라”며 “있는 힘껏 운전자의 발을 당겼고 고통을 느낀 운전자가 고함을 쳤다. 그때 운전자에게 ‘참아라. 안 그러면 죽는다’고 외친 뒤 운전자의 두 발을 힘껏 당겼다”고 전했다.  
 
 운전자를 차량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한 박 실장은 5m가량 더 끌고 간 뒤 운전자의 발을 내려놨다. 그러자 곧바로 차량은 ‘펑’하는 폭발음을 내며 활활 타올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박 실장과 운전자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신이 든 운전자는 박 실장에게 “생명의 은인이십니다”고 말한 뒤 펑펑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 신고로 119 차량이 도착했을 때는 차량은 이미 전소한 뒤였다. 박 실장은 “사고가 난 도로는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곳”이라며 “운전자가 살 운명이어서 내 눈에 띈 것 같다”고 말했다.  

불이 난 차량에 탄 운전자를 구조한 박강학 부산 강서경찰서 민원실장. 사진 본인 제공

 불이 난 차량을 보고 공포감을 느끼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 실장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 순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경찰이라는 직업의식 때문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 같다”고 답했다.  
 
 이번 사고는 아우디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차량이 전복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운전자는 치료를 받고 있으나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 실장은 “음주운전은 타인은 물론 본인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많은 사람이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