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과학자 잔혹한 암살…'프로 킬러' 모사드 냄새가 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30 09:20

수정 2020.12.01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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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가 과거에 보여줬던 잔혹한 암살·파괴 공작을 새롭게 부활시킬까? 계기는 이스라엘의 숙적 이란에 유화적인 조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이다. 지난 11월 27일 이란 핵과학자로 국방부 연구·혁신기구(페르시아어 약자로 SPND) 책임자인 모센 파크리자데(58)가 수도 테헤란 동부의 거리에서 암살되면서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동맹인 미국에 내년 1월 20일 들어서게 되는 바이든 행정부를 불신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정권이 자체적인 암살·파괴 공작으로 이란 핵개발 저지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지난 2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에서 만났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 닷새 뒤인 27일 이란에서 핵 과학자가 거리에서 암살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차량 폭탄 터뜨리고 확인 사살까지  

사실 이번 암살을 누가 저질렀느냐에 대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수법과 동기, 시기로 보면 의심의 화살은 이스라엘의 모사드로 향하 수밖에 없다. 이란 반관영 IRNA통신은 파크리자데가 차량 폭탄이 터진 뒤 총격을 받고 숨진 것으로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이 전송한 현장 사진에 따르면 파크리자데가 탑승했던 자동차의 앞 유리에는 서너 개의 총구멍이 보였다. 총을 난사하지 않고 근거리에서 급소에 조준 사격을 가한 흔적이다. 이른바 포인트 블랑(처형할 때 쓰는 근접 사살) 방식의 암살이다. 폭탄과 총기를 차례로 사용했는데 총기 사용은 확인사실로도 볼 수 있다. ‘이란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려온 파크리자데를 어떻게든 살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누가 암살을 벌였는지는 미궁에 빠질 전망이다. 이란은 범인이 누군지 지목하지 못한 채 “보복”만 다짐했다. 암살 실행자는 이란 당국이 작전 실체와 주체를 파악할 수 있는 흔적을 전혀 찾지 못하도록 철저한 비밀작전을 벌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치밀한 준비부터, 집요한 작전, 그리고 철저한 증거 인멸까지 솜씨 있는 ‘프로페셔널 킬러’가 벌인 암살 작전의 냄새가 난다.  

11월 27일 이란 수도 테헤란 교외에서 발생한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현장. 자동차 앞 유리에 몇 발의 총알 자국이 보인다. 차량 폭탄 폭발 직후 총격을 가해 확인사살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핵개발 책임자로 공개 지목

전 세계적으로 이란에서 핵개발의 아버지이자 설계자를 상대로 이런 공작을 과감하게 벌일 수 있는 조직은 이스라엘의 모사드뿐이다. 중동에서 이렇게 치밀하고 집요하게 암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은 모사드 말고는 떠올리기 쉽지 않다. 핵과학자의 동선 등 이란 내부 정보까지 수집해야 하고, 이란에 킬러를 파견하거나 현지 킬러를 고용해야 하는 어려운 작전이다.  현실적으로 모사드를 제외하곤 이란에서 이런 작전을 수행할 프로 조직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번 작전의 배후로 모사드를 떠올리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인 이유다.  

11월 29일 이란 군인들이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관을 운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게다가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18년 4월 30일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이란이 핵합의 뒤에도 ‘아마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핵무기 개발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체는 이란 국방부 연구·혁신기구(SPND)라고 공개적으로 지목하면서 파크리자데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미 정보를 파악해 주시하고 있으며, 계속 일을 진행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일 수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 웹사이트가 공개한 이란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사진. AP=연합뉴스I

 

이란핵합의 복귀 공약 바이든 당선 직후 암살  

시기도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하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탈퇴했던 이란핵합의(JCPOA)에 복귀하겠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점이다. 이란핵합의는 2014년 2월 18일 첫 협상을 시작해 13차에 걸친 회합 끝에 2015년 7월 14일 체결됐다. 이란과 이를 합의한 주체국가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로 이뤄진 5+1이며 유럽연합(EU)이 함께했다. 하지만 2017년 1월 취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까지 모든 제재를 해제한다는 이른바 ‘일몰조항’에 반발해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란핵합의에 중동 지역 국가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반이란 아랍국가들도 특히 강하게 반발했다. 이란이 장차 핵무기를 다시 개발할 수도 있다는 점과 경제제재를 해제하면 경제력을 회복한 이란이 중동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경제력으로 주변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동시에 작용했다.  

이란의 원자력 에너지 기구가 2019년 11월 4일 공개한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의 내부 모습. 아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300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이란은 1989년부터 핵무기 개발 사업을 진행해왔다. AFP=연합뉴스

 

62년 아랍 미사일 개발계획 암살로 저지  

사실 이스라엘 대외정보·공작조직인 모사드는 적국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능력과 관련 인력 제거에 오랜 경험이 있다. 모사드는 자동차·전화·모바일 폭탄, 포인트 블랭크(처형방식 근접 사살)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표적을 무력화해왔다.  
1960년대 아랍국가에서 로켓을 개발하던 나치 출신 과학기술자들을 제거한 ‘다모클레스’ 작전은 특수기관 암살 공작의 전설이 되고 있다. 이집트의 미사일 개발을 지원하던 서독 국적의 로켓과학자 하인츠 크루크가 1962년 9월 11일 독일 뮌헨에서 사라진 게 시작이다. 그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1962년 11월 28일에는 이집트의 할루안에 있는 비밀 로켓공장인  ‘팩토리333’에서 우편폭탄이 터지면서 5명이 숨지고 프로젝트 책임자가 실명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가동하던 미사일 개발 계획은 이런 일련의 공작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 능력 지닌 기술자·책임자를 제거해 화근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암살 공작은 국제법상 문제가 되는 비인간적인 작전이지만, 대부분 증거를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처리해 외교적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드물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부인해왔으며, 모사드는 침묵을 지켜왔다. 모사드는 다만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의심을 받을 뿐이다.  
주목할 점은 모사드가 바빌론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나치 무장친위대 장교 출신의 오스트리아인 오토 슈코르체니를 정보원으로 고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집트에서 미사일을 개발하던 독일인 명단을 입수해 모사드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부대 장교인 오토는 1943년 실각해 산장 호텔에 연금돼 있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구출하고,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지도자인 브로즈 티토 납치를 시도하는 등 특수작전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전후 전범 재판을 받다가 탈옥했으며 스페인을 거쳐 잠시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모사드에 협력했다. 모사드는 작전 성공을 위해서는 유대인의 적인 전 나치 무장친위대원도 정보원으로 활용한 셈이다.  
1990년 3월 20일에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캐나다 출신 야포 개발자 제럴드 벌을 자택 앞에서 ‘포인트 블랭크’ 방식의 저격으로 제거했다. 벌은 당시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지원해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야포를 개발하는 ‘바빌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을 제거하는 암살 공작은 적국에서는 물론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독일이나 벨기에 등 서방 국가에서도 거침없이 벌어진 것이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1월 23일 시위대가 전날 살해된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암살에 항의하는 사위를 벌이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라크·시리아 핵개발 시설 폭격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출동시켜 국경 너머 다른 나라의 영토에 있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심지를 직접 공습해 제거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1981년 6월 7일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가동하던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해 파괴하는 오페라 작전을 수행했다. 이스라엘과 이라크는 국경을 접하지 않는데, 이라크 공습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국경 상공을 비행하는 용이주도함을 보였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2007년 9월 6일엔 시리아의 핵 시설을 공습하는 오차드 작전을 수행했다. F-15I(미국제 F-15의 이스라엘 수출 버전) 10대 등을 동원해 레이저 유도 폭탄으로 정밀 폭격을 가해 핵 시설을 파괴했다.  

이스라엘은 1989년부터 ‘아마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핵개발에 나선 이란을 상대로도 화근 제거 작전을 펼쳤다. 2012년부터 2012년 사이 마수드 알리모하마디, 마지드 샤흐리아리, 마리우쉬 레자에이네자드,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 등 4명의 이란 핵 과학자가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 페레이둔 아바시라는 과학자는 암살 기도에서 살아남아 부상만 입었다. 이 중 2명은 오토바이 폭탄 공격을 당했다. 테헤란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이들이 승차하고 달리고 있던 차량에 접근해 자석식 폭탄을 부착하고는 사라졌다. 핵 과학자들은 강력한 폭탄이 터지면서 즉사했다.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작전이다. 누가 봐도 프로의 솜씨다.  

27일 이란 핵과학자 거리에서 암살
폭탄 이어 총격…잔혹한 확인사살
이런 공작 가능한 조직은 모사드뿐
이란, 복수 다짐하지만 증거 못내놔
모사드, 62년부터 안보위협 제거공작
미사일 개발자 암살, 핵시설 폭격해
7월 이란 네타즈 핵시설 의문의 화재
아브라함 협정으로 아린 포위망 강화
22일 네타냐후의 사우디 방문도 주목
안보위협 제거에는 에외없는 이스라엘
암살·파괴로 핵 단독저지 시도할지 주목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1월 23일 시위대가 전날 살해된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암살에 항의하는 사위를 벌이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핵합의로 이스라엘·사우디 당황

하지만 암살 작전으로는 이란의 핵개발을 멈추거나 지연할 수 없었다. 안보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은 사실상 동맹국인 미국에 매달렸다. 2006년 이란에 대한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시작됐다. 유엔은 일련의 안보리 결의를 통과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핵 재처리를 실시하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실시했다. 미국 의회는 이란과 거래하는 나라에 경제보복을 할 수 있는 내용의 포괄적 이란 제재법을 통과했으며, 유럽연합(EU)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권은 유럽과 손잡고 2015년 7월 14일 이란과 이란핵합의를 맺으면서 이스라엘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란은 핵 활동을 줄이거나 중지하면 국제사회는 경제제재를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이란은 향후 10년간 원심분리기를 약 3분의1 수준으로 줄이고, 15년 동안은 우라늄을 일정 수준(3.67%) 이상으로 농축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 목적의 새로운 시설 건설도 하지 못한다. 특히 포르도 우라늄 농축시설은 적어도 15년간 농축을 하지 않고 이를 평화 목적의 핵 관련 센터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란은 합의된 연구 분야의 국제협력만 추진하고 어떠한 핵분열 물질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다.  

이스라엘이 특히 경악한 것은 이란 핵합의에 있는 일몰조항이다. 이란 핵합의가 영원한 게 아니라 10~15년만 일시 중지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핵합의는 한시적으로 이란 핵 개발 중지 효과만 확보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이란에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그때까지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해 이란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봤다. 게다가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아랍 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탄도미사일은 핵무기 운반수단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2018년 4월 30일 탤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핵합의 뒤에도 몰래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네탸냐후는 이란 국방부의 연구·혁신기구(SPND)가 핵개발을 수행하고 있으며 모센 파크리자데가 책임자라고 지목했다. 이번에 암살된 바로 그 인물이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설득 이란핵합의 단독 탈퇴 유도  

위기를 느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하자 누구보다 먼저 뉴욕으로 달려가 트럼프 타워에서 당선인을 만났다. 네타냐후는 정권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2018년 5월 8일 이란핵합의 단독이탈을 끌어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를 부활·강화해 이란의 경제 숨통을 막고 질식사를 유도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란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에 경제보복을 가할 수 있는 미국의 조치는 이란의 대규모 경제난을 유발했다.  
여기에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란에 위협을 느끼는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 지역의 아랍 군주국을 설득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수교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밀어붙였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여기에 동참했다. 아랍권까지 끌어들여 대이란 포위망을 강화하는 전략적 큰 그림이 바탕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오른쪽)는 2021년 10월까지만 총리를 맡고 그 뒤로는 연정 파트너엔 베니 간츠 청백연합 대표(왼쪽)에게 자리를 넘기기로 했다. AFP=연합뉴스

네타냐후, 바이든 당선하자 위기 느낀 듯

하지만 이란핵합의에 복귀하고 경제제재도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20년 11월의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15년 오바마 정권에서 이란핵합의를 주도했던 토니 블링컨과 제이크 설리반 등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관리가 바이든 외교안보팀 핵심으로 들어서면서다. 블링컨은 2009년 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거쳐 2013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오바마의 백악관에서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냈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는 국무부 부장관을 맡았다. 오바마 행정부 8년 내내 외교안보의 핵심을 맡으면서 이란핵합의를 주도했다. 설리번은 2011년 4월부터 2013년 2월까지 백악관 정책국장을 지냈으며 블링컨의 뒤를 이어 2013년 2월부터 2014년 8월까지 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에 경악했다. 11월 27일 파크리자데 암살은 다급해진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테헤란의 핵과학자를 제거해 이란의 핵개발 능력 감소를 노린 듯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미리 대못을 박아놔서 새로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 복귀나 이란과의 새로운 대화와 협상을 하기 힘들도록 압력을 가하는 효과도 있다. 경악한 이란이 미국과의 접촉을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대선을 앞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미국과 쉽사리 접촉이나 협상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이란 측은 핵합의 복귀를 밝힌 바이든 측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합의 탈퇴로 인해 이란 국민이 본 피해부터 보상하다”며 바이든 측과도 거리를 두기도 했다. 테헤란 거리의 시위대가 이란핵합의 탈퇴를 결정한 트럼프의 사진과 이번에 당선이 확정된 바이든의 사진을 함께 불태우는 장면이 외신 사진이 등장하기도 했다. 예사롭지 않은 장면이다.  

11월 19일 예루살렘에서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오른쪽)과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11월 22일 네타냐후, 사우디 방문해 MBS 만나  

주목할 점은 지난 11월 19일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데 이어 22일에는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를 비공개리에 만났다는 사실이다. 만난 곳이 이스라엘에서 멀지 않은 네옴 신도시라는 점도 관심을 끈다. 무함마드 빈 살만이 홍해 연안에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미래형 첨단도시 건설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이스라엘의 최남단 도시 에일라트와는 100㎞쯤 떨어졌다. 역사상 처음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정상의 만남을 보도한 하아레츠, 예루살렘 포스트,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 이스라엘 언론은 이번 만남에서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미국은 이란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이해가 일치한다.  
이런 상황에서 파크리자데 암살이 이 만남의 닷새 뒤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이스라엘의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나. 이스라엘이나 모사드가 암살을 벌였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하지만 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작전 능력도, 전략적 이해관계도, 시기도 모두 이스라엘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란 수도 테헤란 동부의 소도시인 압사드르의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현장. AP=연합뉴스

 

‘절대 반지’ 핵보유 인정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  

만일 이스라엘이 암살에 나섰다면 왜 그랬을까. 안보에선 미국도 믿을 수 없으니 내 손에 피를 묻혀가며 자력으로 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절대 반지’일 수 있는 핵의 개발은 협상이나 설득으로 저지하기 쉽지 않으며, 오로지 힘으로 누를 수밖에 없다고 네타냐후 총리가 판단한 것일까. 네타냐후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세 차례 치러진 총선에서 정적이나 다름 없는 베니 간츠 전 참모총장이 대표로 있는 청백연합과 연정을 구성했다. 연정 협상 결과 2012년 10월까지만 총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연정 구성 때 했던 약속을 버리고 다시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마음이 급한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이 이란 핵개발을 단독저지하기 위해 선제조치를 펼친 게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이미 지난 7월 2일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대상인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는 나탄즈 핵시설에서 원인 모를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이 역시 이스라엘의 사이버 공격이나 드론 공격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다.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말이다.  

내년 6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이란의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AFP=연합뉴스

만일 파크리자데 암살을 모사드가 벌인 것이라면 안보위협에 대해선 필사적으로, 집요하게, 철저하게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본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에는 예외없이 단호한 모습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암살·파괴 공작으로 이란의 집요한 핵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저지하겠다고 나섰다면 중동 정세는 더욱 불안정하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