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도 안 돌아온 5만원권...지하경제 유입? 범인은 코로나

중앙일보

입력 2020.11.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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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중앙포토

올해 들어 한국은행의 5만원권 환수율이 최초 발행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시중에 5만원권을 공급하는 데 대한 애로가 커지자 '5만원권 지하경제 유입 가능성'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 환수율 하락의 원인을 분석한 뒤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5만원권 환수 안 되자 '지하경제 유입?' 우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이후 5만원권 환수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올해(1월~10월) 5만원권 환수율은 25.4%로 2009년 6월 최초 발행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5만원권 환수율은 60.1%, 2018년 5만원권 환수율은 67.4%로 올해의 두배를 상회한다.
 

은행권 환수율 추이. 한국은행

5만원권 환수율이 떨어져 한은이 시중에 5만원권을 공급하는 데 대한 애로가 커지자 일각에선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유입됐을 경우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지하경제란 통계나 규제 체계에 포착되지 않는 경제로, 마약매매·성매매·도박·탈세 등 위법행위의 결과로 발생하는 경제활동을 뜻한다. 자금 흐름이 드러나선 안 되기 때문에 현금 거래가 주요 결제 수단이다.
 

예전과 비교하니…발행액↑환수액↓, 대면 거래 부진도

한은은 5만원권 환수율 하락 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과거 금융불안기, 타 권종(1만원권 등), 주요국 고액권과의 비교·평가를 통한 하락요인 분석에 나섰다. 그 결과 지하경제 유입 등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단 예비용 수요의 확대 등 경제적 충격에 의한 문제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한은은 먼저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금융불안기와 현재를 비교했다. 당시는 고액권(1만원권) 발행액과 환수액이 모두 감소하면서 환수율은 90%대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했는데, 올해는 5만원권 발행액이 늘어난 데 반해 환수액이 큰 폭 감소해 환수율이 급락한 것이 특징이다.
 

업종별 GDP 성장률 추이. 한국은행

한은이 분석한 결과 이는 먼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특성상 대면 상거래가 부진하면서 화폐 환수 경로에 부정적 충격이 작용한 까닭으로 파악됐다. 그 근거로 숙박음식(-12.9%), 여가·서비스(-25.6%) 업종의 GDP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큰 폭 감소한 것을 들었다. 한은은 또 코로나19 이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고 저금리 현상까지 겹치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현금 보유 성향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화폐수요 증가" 고액권만 환수율 꺾여…해외도 비슷

한은은 또 올해 1만원권(-34.7%)·5000원권(+1.3%)·1000원권(-1.3%) 등 타 권종의 환수율 변화 폭을 5만원권(-39.4%)과 비교한 결과 고액권의 환수율이 유독 크게 하락했음을 파악했다. 그 이유로는 시중에서의 고액권 수요 증가세가 높아지자 한은이 5만원권을 적극적으로 공급한 것을 들었다. 고액권의 경우 거래용 목적의 저액권과는 달리 예비용 수요 목적이 커 발행액에 비해 환수액이 적다는 것이다.

권종별 환수율. 한국은행

 
해외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봐도 이런 현상은 비슷하게 목격됐다. 한은에 따르면 유로존의 경우 100유로 이상 고액권의 환수율이 작년보다 19.3% 떨어진 데 반해 50유로 이하 저액권의 환수율은 6.4% 떨어지는 데 그쳤다. 미국의 100달러권 환수율이 2001년 IT버블 붕괴 당시 26.6% 줄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5.6% 준 것도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해외에서 고액권을 중심으로 화폐수요가 증가하면서 환수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목격됐다.

미국 및 한국 환수율 비교. 한국은행

 
한은 관계자는 "올해 코로나19 이후 5만원권 환수율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저금리 기조에 따른 5만원권에 대한 견조한 수요와, 대면 상거래 부진 등 화폐 환수경로 상의 부정적 충격이 결합돼 급격하게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며 "주요국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지하경제로의 유입 등 구조적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