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인들이 27일 제52회 한일경제인회의를 열고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어갈 방안을 논의했다. 한일경제인회의는 1969년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양국이 번갈아 개최해온 협의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한차례 연기된 뒤 서울 JW메리어트호텔과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을 화상으로 연결해 개최했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홍석현(사진) 한일비전포럼 대표 겸 중앙홀딩스 회장은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해 "단 하나의 갈등 요인이라도 추가되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 될 수 있다"고 진단하며 "한일협정 60주년인 2025년을 목표로 지금부터 역사화해 프로세스에 돌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역사 문제를 직접 다툼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미래를 공유함으로써 과거사를 풀어가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7일 제 52회 한일경제인회의 화상 개최
홍석현 회장 "한·일 함께해야 美·中·北이 존중"
"코로나19 진정되면 유엔사 후방기지 방문"
日 후쿠다 전 총리, 韓 남관표 주일대사 등 참석
◇"한·일, '덩샤오핑의 지혜' 상기해야"
홍 회장은 한일 관계의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과 관련해선 "양국의 지도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사법절차에 개입할 수 없는 만큼 특별입법 절차를 통해 일본에 퇴로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현실적인 수순이라고 제시했다. 이런 전향적 조치를 통해 일본에 끌려다니지 않고, 단번에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 정부는 과거 두 차례 배상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국회에서 특별입법을 통해 세 번째의 배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친일시비로부터 자유롭고, 민주화의 정통성을 가진 문재인 정부는 이런 결단을 내릴 자격과 여유가 있다"고도 했다.
홍 회장은 대신 일본 정부는 불법적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정부 간 합의의 형태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일 함께해야 美·中·北으로부터 존중받아"
홍 회장은 한국이 일본과 서둘러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 문제를 들었다. 그는 "한국이 일본과 협력적 관계를 복원할 때 미국과의 관계를 증진할 수 있고, 중국으로부터도 더 공정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일본, 미국, 중국의 존중을 받는다면 북한도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최근 스가 일본 총리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특히 수백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일청구권 자금은 북한이 개방됐을 때 경제 개발의 마중물이 될 것이며, 북한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개발 수요는 돌파구가 필요한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홍 회장은 전망했다.
홍 회장은 또 한·일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코로나19가 진정되는대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일비전포럼의 유엔사 후방기지 방문은 한일 양국과 미국 3각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후쿠다 전 총리 "정치·외교적 상황 개선 위해 분발해야"
일본 측에서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제91대 일본 총리와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참석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양국은 가장 소중한 이웃 국가이자 바꿀 수 없는 무역파트너"라며 "현재의 정치·외교적 어려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더욱 분발해달라"고 당부했다. 누카가 회장도 "얼마 전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 7명의 한국 국회의원이 방문했을 때, 양국 정상이 회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전력을 다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2018년 평창올림픽 때 양국이 노력한 것처럼, 내년 도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상호 협력을 구축해나가자"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한일경제인회의는 토론을 마친 뒤 공동성명을 통해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합의 환영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s) 달성 등 공통 과제를 위한 상호 협력 ▲청소년 및 지역 간 교류 등 한일우호 인프라 추진 ▲민간교류 추진을 위한 양국 정부의 지원 촉구 등을 선언했다. 또 내년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