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 브랜드 '로켓런치'를 운영하는 우진원 디자이너의 말이다. 2010년 론칭 후 국내를 비롯해 중국·일본·대만·홍콩·미국 등지 50여 개 해외 편집숍에 진출하며 유명세를 떨쳤지만 코로나19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고 한다. 이때 온라인 패션 플랫폼 '하고'가 손을 내밀었다.
보통 패션 플랫폼은 브랜드를 입점시킨 후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래 수수료를 수익원으로 삼는다. 때문에 유명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제품 판매에 공을 들인다. 플랫폼 입장에서 브랜드의 성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경영 상황까지 관심을 두진 않는다. 그런데 하고는 여느 플랫폼이 보여온 행보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지난 8월 우진원 디자이너의 회사 '스페이스 스테이션'에 투자를 진행하고, 재무·회계 등의 경영 지원과 10여 곳 이상의 채널로 유통망을 확대하는 전략도 함께한다는 데 합의했다. 덕분에 스페이스 스테이션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대비 120%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날개를 단 국내 패션 플랫폼들이 기존의 판매 중계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플랫폼마다 각자의 개성에 맞춘 미래 전략이 돋보인다.
"동반성장만이 살길" 브랜드 키우는 '하고'
새로운 '윈윈' 전략의 대상은 플랫폼과 브랜드다. 홍 대표는 로켓런치를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에만 브랜드 3곳에 투자했다. 필요한 자금과 경영지원·컨설팅은 제공하지만 브랜드 전개 방향과 전략은 디자이너와 디렉터에게 일임한다. 우 디자이너는 "한번에 투자금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 아니라, 진행하고 싶은 마케팅과 전략을 공유하면 자금과 네트워크 등 필요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이라고 했다. 홍 대표는 "이후 한 달에 1개씩 20~30곳에 더 투자할 계획"이라며 "브랜드를 '사는' 게 아니라 '잘 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브랜드를 이해하고 잘 운영할 수 있는 오너 디자이너·디렉터를 도와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그 결과를 나누길 원한다는 의미다.
하고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엔 대명화학이 있다. 하고는 올해 3월 대명화학의 투자를 받고, 이를 통해 브랜드 키우기에 뛰어들 수 있었다. 대명화학의 권오일 회장은 국내 패션업계에선 잠재력 있는 브랜드의 '떡잎'을 알아보고 많은 투자를 진행해 '한국 패션업계의 얼굴 없는 큰손'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지금까지 '키르시' '오아이오아이' '비바스튜디오' 등 다수의 스트리트 브랜드와 코웰패션 등을 인수해 성정시켰다.
융합형 PB로 승부수 띄우는 'W컨셉'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로 다루는 패션 플랫폼 'W컨셉'은 론칭 초기부터 PB(자체 브랜드) 상품에 주력했다. 이들의 PB ‘프론트 로우’는 10만~20만원대 슈트·원피스 등을 중심으로 시즌별 유행 아이템을 가성비 좋게 만들어 성공했다. 최근 몇 년간은 국내 인기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더니, 올해 초엔 ‘에디션B’라는 새로운 PB를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스니커즈로 Z세대 정조준 하는 '무신사'
무신사는 Z세대 소비자층을 잡기 위해 한정판 운동화를 선택했다. 올해 7월 스니커즈 온라인 마켓 '솔드아웃’의 서비스를 론칭하고 공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정판 운동화는 스트리트 패션을 중심으로 Z세대를 공략해온 무신사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다. 국내에선 네이버 카페 '나이키매니아' 외엔 희귀 운동화를 구하기 어려웠던 니치마켓을 제대로 공략했다. 이미 크림·리플·솔닷 등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업계에선 "희귀 스니커즈 거래는 모두 탐내는 시장이었지만 자본력·노하우가 문제였는데, 이를 갖춘 무신사가 뛰어들었으니 이제 경쟁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평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8월 말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인지도 높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구독자 수는 5400명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이미 2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무신사TV'를 함께 연동해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솔드아웃에서 거래된 최고 리셀가는 4500만원. 전설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나이키 에어 조던 1 OG 시카고'다. 무신사 측에 따르면 국내 운동화 거래가 중 최고가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