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집값, 공간 다이어트 열풍을 불러오다
싼 가구의 비싼 배신
서울 평당 매매가 3200만원 돌파
큰 평수 이사 좌절 시대, ‘공간=돈’
물건에 내준 주인자리 되찾으려
내몸 지방 빼듯 버리기·정리 바람
코로나19 와중에도 평일 고양 이케아는 사람들로 붐볐다. 원룸에서부터 4인 가구에 이르기까지 세대원 수에 맞춰 쇼룸처럼 꾸며놓은 매장을 보면서 다들 패스트 패션처럼 가성비 좋아 쉽게 사고 버릴 수 있는 패스트 가구(FMCG·Fast-Moving Consumer Goods)를 집에 들여놓을 생각에 들뜬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를 쓴 서윤영 건축 칼럼니스트는 이런 소박한 소비에 찬물을 확 끼얹는다. “가령 1.5m×2m짜리 더블 침대를 200만원에 합리적으로 잘 샀다고 생각하지만 대략 한평(3.3㎡)을 차지하고 있으니 3400만원이나 마찬가지예요. 침대값 200만원에 공간 점유 비용 3200만원을 더해서. 3년 만에 1200만원 더 올랐네요.”
너비 0.8m 깊이 0.6m인 한쪽짜리 1인용 옷장 하나는 문 여닫는 클리어런스 공간까지 따지면 가격이 800만원에서 시작한다. 반 평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 양문형 냉장고는 최소 1600만원짜리다.
내 집 아닌 전세 사는 사람이 치러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지난 10월 평당 2040만원으로, 사상 첫 2000만원 시대를 열었다. 34평(112.2㎡) 전셋집에 이사해 한 평 반(4.9㎡)짜리 작은 방 하나를 옷방(워크인 클로짓)으로 꾸민다고 가정해보면 2012년(평당 평균 855만원)엔 1280만원이면 가능했지만 이젠 최소 3060만원을 옷을 위한 공간으로 투자해야 한다. 같은 평수, 심지어 더 좁은 집인데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전셋값이 껑충 뛰었다면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가 아니라 좁은 집에서 넓게 살기 위해서라도 공간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없던, 공간 점유 면적을 감안한 비용 계산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집 아끼면 당장 1억 버는 효과
실제로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여파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식구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 꾸미기가 대세로 떠올랐다. 여기에다 지난 8월 임대차 3법 도입을 계기로 서울 아파트 매매는 물론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면서 ‘공간=돈’으로 환산해 공간을 아끼는 공간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까지 더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집 정리 트렌드가 수납에서 버리기를 통한 미니멀 라이프로 서서히 넘어왔다면, 고삐 풀린 부동산값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마저 꽉 막혀 평수 넓혀 이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지금은 비싼 집 아껴 쓰기, 다시 말해 같은 집을 넓게 쓰는 공간 확보가 대세다.
서윤영 칼럼니스트는 “지금은 돈과 시간은 물론 하다못해 감정 소모까지 아끼고 줄이려고 신경을 쓰는 세상인데 이상하게 공간만큼은 아껴 쓴다는 개념이 부족하다”며 “수납이라는 이름으로 물건에 공간을 다 내주고 정작 집주인은 불편하고 좁게 쓰는 건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델이 일반인과 달리 군살(지방) 없는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 보기가 좋은 것처럼 모델하우스 역시 불필요한 지방(수납)이 없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라며 “몸에 지방을 빼는 것처럼 집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납가구를 둔다는 자체가 그 공간을 사람이 아닌 물건이 점유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란 얘기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린 후 그걸 담고 있던 수납가구를 덜어낸다든지, 아니면 바꿀 때가 된 오래된 가구나 가전을 새로 살 때 크기가 작은 걸로 교체하는 식으로 가구가 차지하는 면적을 10%만 줄여도 34평짜리 집을 37평처럼 쓸 수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으로 환산하면 순식간에 1억원을 버는 효과다. 결코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버리기 기술
하지만 이런 방식이 한국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게 국내 정리 전문가들 주장이다. 정희숙 컨설턴트 역시 버리기를 중요하게 꼽는다. 하지만 그는 “설렘 여부는 우리와는 먼 얘기”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최근 첫 추위가 왔을 때 SNS엔 ‘곤도 마리에한테 속아 설레지 않는 패딩을 다 버렸더니 입을 게 없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정 컨설턴트는 “우린 4계절이 있어 원체 짐이 많다”며 “설레지 않아서 버리는 게 아니라 공간을 얻고자 불필요한 것을 버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밖에서 안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장소가 아닌, 종류별 정리를 제안했다. 옷을 서랍이 아니라 걸어서 정리하는 방식도 유용하다. 흔히 많이 수납할 수 있어 서랍장을 선호하는데 옷을 많이 못 걸기 때문에 오히려 걸어서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지영 대표는 현재의 나를 위해 “설레어도 버려라”라는 더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또 “오래된 가구부터 버리는 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라는 조언도 했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