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헌재가 속히 공수처법 위헌 여부 판단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0.11.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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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됐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작업이 순탄치 않게 흘러가자 더불어민주당은 법을 고쳐 야당 측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후보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달 3일로 법 개정 시한까지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장외 투쟁을 거론하며 법 개정 시도에 반발하고 있다. 여당이 의석수라는 힘으로 밀어붙이면 사실상 야당의 반대는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밖에 없다.
 
현행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수처는 헌법에 위배되는 기구라고 보는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 참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후보 추천위원을 낸 것은 ‘전면적 보이콧’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이처럼 야당이 비록 억지춘향식이지만 공수처장 추천 작업에 동참했으니 여당이 진정으로 공수처 조기 출범을 원한다면 그 기회를 살렸어야 했다. 야당 측이 제시한 후보에 동의하든, 그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인물을 내세워 동의를 얻어내든 끝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회의를 두 차례 한 뒤에 돌연 “국민의힘이 시간 끌기를 한다”고 비난하면서 추천 작업을 무산시켰다. 그러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법 개정에 돌입했다.

‘야당 비토권 보장’ 약속 어겨 갈등 증폭
위헌 논란 정리 않고 공수처 강행은 안 돼

더불어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공수처법이 바뀌면 공수처장 임명에 야당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지난해 “공수처가 정권 호위 조직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언론·법조·학계에서 쏟아지자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에 공수처장 비토권을 주겠다”고 했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그 거부권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야당을 배제한 공수처장 임명의 필요성을 태연하게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낸 법 개정안에는 공수처 검사의 기본 임기를 3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등의 독소 조항이 있다. 임기에 손대는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의 여당 편 사람들이 공수처를 그대로 장악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다.
 
공수처 문제가 첨예해진 것은 현 정권이 원하는 형태의 공수처는 위헌적 기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수의 학자·변호사가 공수처가 입법·행정·사법 중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게 설계된 것, 특정 계급 이상의 공직자만 타깃으로 수사하는 것 등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지난 2월에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5월에는 법조인 단체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헌법에 기초해 국가적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3개월 만에 끝냈던 헌재가 이 사안은 10개월째 붙들고 있다. 헌재가 어느 쪽으로든 위헌 문제를 정리하지 않은 채 여당이 공수처를 밀어붙이는 건 곤란하다. 신속한 결정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