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서울시는 곧바로 다음날부터 65세 이상 노인에겐 지하철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는데요. 이 시절 분위기로는 대통령 지시가 거의 법이었으니 전광석화 같은 일 처리가 이해됩니다. 이전까지는 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에게 경로 우대증을 발급해 시내버스는 무료, 지하철은 요금 절반을 깎아줬습니다.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2호선 개통식 때 "노인 무료" 지시
그러나 갈수록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고 부산(1985년)과 대구(1997년), 인천(1999년), 광주(2004년), 대전(2006년) 지하철이 속속 개통하면서 무임승차는 전국적인 현안이 됐습니다. 올해 노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16%가량으로 80년대에 비하면 4배 수준입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도 예외는 아니어서 91년 노인에게 요금의 50%를 깎아주기 시작했고, 97년 8월부터는 아예 무료 탑승으로 바뀌었는데요. 여기에 국가 유공상이자(89년), 장애인(93년), 독립유공자(95년), 5.18민주화운동 부상자(2002년)도 차례로 지하철 요금이 면제됐습니다.
서울, 부산 등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에 따르면 84년부터 시작된 무임승차로 인해 누적된 손실만 약 15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최근 4년간(2016~2019년)만 따져도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금액은 평균 5814억원이나 됐는데요.
전국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 15조원
게다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으로 승객이 크게 줄어든 탓에 수입이 더 감소했는데요. 서울교통공사만 해도 예년의 2배에 달하는 1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비단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할 거란 예측이어서 무임승차 부담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날 거란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노인 인구는 2030년에는 전 국민의 25%, 2040년에는 34%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사실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논란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손실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도시철도운영기관 중에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 하는 논쟁도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재는 도시철도와 국철 운영기관 중 코레일만 유일하게 무임승차 손실에 대한 국비 보전(약 60%)을 받고 있습니다.
급격한 고령화로 운영 부담 더 커져
일본은 70세 이상 노인 중 신청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할인 폭을 달리 적용하고 있고, 영국은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만 60세 이상 노인에게 무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려면 상당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노인 빈곤율이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물론 수송원가의 13~65%에 그치고 있는 지하철 요금을 현실화하면 어느 정도 손실을 메울 수 있겠지만, 서민 부담 가중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서울만 해도 5년가량 요금이 동결되어 있습니다.
"노후차량 교체 비용 마련도 어렵다"
서울지하철 1호선은 개통한 지 46년, 2호선은 40년이 넘었고 3호선(35년)과 4호선(35년), 그리고 부산지하철 1호선(35년)도 노후화가 심하다고 하는데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노후시설을 개량하거나 교체하기 위해선 2023년까지 매년 평균 1조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며 "노후시설 재투자는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합니다.
전문가들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무임승차 손실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도시철도 운영을 지원하지 않는 건 불합리하다"며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공동으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부, 지자체, 운영기관 부담 나눠야
나갈 돈은 많은데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정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 역시 재정 상황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승객 안전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3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부담을 나눠서 질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기를 기대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