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개통날, 전두환 "노인은 무료"…누적 손실 15조 찍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22 06:00

수정 2020.11.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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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포스터. [강갑생 기자]

 1984년 5월 22일은 서울지하철 2호선의 모든 구간이 연결돼 완전개통한 날입니다. 이날 개통 행사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전 대통령은 "노인복지 향상과 경로사상을 높이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들에겐 지하철운임을 면제토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곧바로 다음날부터 65세 이상 노인에겐 지하철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는데요. 이 시절 분위기로는 대통령 지시가 거의 법이었으니 전광석화 같은 일 처리가 이해됩니다. 이전까지는 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에게 경로 우대증을 발급해 시내버스는 무료, 지하철은 요금 절반을 깎아줬습니다.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2호선 개통식 때 "노인 무료" 지시  

 사실 이때만 해도 노인에게 지하철을 무료로 타게 해주는 게 큰 부담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노인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80년대 노인 비율은 인구의 4%가 채 안 됐습니다. 게다가 서울 지하철만의 일이기도 했는데요. 

84년 5월 2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전구간 개통식에 참석한 뒤 지하철을 시승하고 있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 내외.(왼쪽 첫째와 둘째) 이 행사에서 노인 무료 탑승 지시가 있었다. [중앙일보]

 
 그러나 갈수록 인구 고령화가 심화되고 부산(1985년)과 대구(1997년), 인천(1999년), 광주(2004년), 대전(2006년) 지하철이 속속 개통하면서 무임승차는 전국적인 현안이 됐습니다. 올해 노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16%가량으로 80년대에 비하면 4배 수준입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도 예외는 아니어서 91년 노인에게 요금의 50%를 깎아주기 시작했고, 97년 8월부터는 아예 무료 탑승으로 바뀌었는데요. 여기에 국가 유공상이자(89년), 장애인(93년), 독립유공자(95년), 5.18민주화운동 부상자(2002년)도 차례로 지하철 요금이 면제됐습니다. 
 
 서울, 부산 등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에 따르면 84년부터 시작된 무임승차로 인해 누적된 손실만 약 15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최근 4년간(2016~2019년)만 따져도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금액은 평균 5814억원이나 됐는데요. 

[자료: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취합]

 

 전국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 15조원  

 특히 지난해는 6500억원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이는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이 지난해 기록한 당기순손실의 60.2%나 됩니다. 이 중 부산은 91.5%, 서울은 66.3%를 무임손실이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으로 승객이 크게 줄어든 탓에 수입이 더 감소했는데요. 서울교통공사만 해도 예년의 2배에 달하는 1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비단 코로나 19가 아니더라도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할 거란 예측이어서 무임승차 부담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날 거란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노인 인구는 2030년에는 전 국민의 25%, 2040년에는 34%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사실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 논란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손실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도시철도운영기관 중에 누가 부담해야 하느냐 하는 논쟁도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재는 도시철도와 국철 운영기관 중 코레일만 유일하게 무임승차 손실에 대한 국비 보전(약 60%)을 받고 있습니다. 
 

 급격한 고령화로 운영 부담 더 커져   

 그래서 노인 기준을 70세로 올리자거나, 노인의 소득수준에 따라 할인율을 차등화하자는 등의 대안도 거론됩니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주요 국가 중에 우리처럼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무료 혜택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 3가역은 노인 이용이 특히 많은 곳이다. [중앙일보]

 
 일본은 70세 이상 노인 중 신청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할인 폭을 달리 적용하고 있고, 영국은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만 60세 이상 노인에게 무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하려면 상당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노인 빈곤율이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물론 수송원가의 13~65%에 그치고 있는 지하철 요금을 현실화하면 어느 정도 손실을 메울 수 있겠지만, 서민 부담 가중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서울만 해도 5년가량 요금이 동결되어 있습니다.   
 

 "노후차량 교체 비용 마련도 어렵다"

 이 때문에 지자체와 도시철도운영기관들은 정부에 손실 보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절박감이 더 강해졌는데요. 막대한 돈이 필요한 노후 차량과 장비에 대한 재투자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서울지하철 1호선은 개통한 지 46년, 2호선은 40년이 넘었고 3호선(35년)과 4호선(35년), 그리고 부산지하철 1호선(35년)도 노후화가 심하다고 하는데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노후시설을 개량하거나 교체하기 위해선 2023년까지 매년 평균 1조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며 "노후시설 재투자는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합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개통한지 46년이나 돼 노후시설 재투자가 절실하다. [중앙일보]

 
 전문가들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무임승차 손실의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도시철도 운영을 지원하지 않는 건 불합리하다"며 "정부와 해당 지자체가 공동으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부, 지자체, 운영기관 부담 나눠야 

 하지만 정부 곳간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무임승차 손실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의 국정감사 답변에서 "도시철도 운영비는 원칙적으로 지자체 부담이다. 노인ㆍ장애인 등 복지 업무는 지방 사무와도 관련 있다”며 지원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서울 지하철의 승객이 크게 줄어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1조원 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뉴스 1]

 
 나갈 돈은 많은데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정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 역시 재정 상황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승객 안전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3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부담을 나눠서 질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기를 기대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