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야기만 있다. 시민 공모를 통해 뽑았다. 프로젝트명은 ‘2020 공공미술 시민 아이디어 구현’으로 시민이 상상하는 이야기를 뽑아 시민과 전문가가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서울식물원의 이야기 공모에 총 13개의 작품이 참여했고, 그 중 ‘약속의 나무’가 뽑혔다. ‘변함없는 자연과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이 스토리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 작가 셋을 전문가들에게 추천받았고, 이 중 하나를 뽑아 설치할 예정이다.
위치가 논란이 됐다. 나무는 당초 식물원 안 잔디마당인 ‘초지원’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시민도, 전문가도 반발했다. 세 작품 중 하나를 뽑는 투표 사이트에 반대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식물원에 인공조형물이 웬 말인가요” “자연 그대로가 아름답고, 세금 낭비입니다” “식물원에 식물 보러 가고 싶어요”….
이윽고 서울시는 ‘약속의 나무’를 심을 장소를 초지원에서 식물원의 주 출입구, 진입광장으로 옮겼다. 다시 작가군을 추천받아 세 작품을 선정했다. 시민 선호도 투표를 거쳐 전문가 심사를 통해 최종 작품을 뽑을 예정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2013년부터 서울식물원의 총괄계획가(MP)를 맡은 조경진 서울대 교수(환경조경학과)는 “식물원 입구에서 보면 궁산과 북악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세 작품 모두 공간의 분위기를 해칠 것 같다”며 “이 정도 예산이면 좋은 기획자와 작가를 선정할 수 있는데 시민 참여 과정만 강조하며 경직하게 따르면서 벌어진 일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 미술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1호 모델로 성공사례도 있다. 중랑구 용마폭포공원의 ‘타원본부’다. 하지만 모든 공공 조형물이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장소도 내용도 다르다. 시는 작품을 뽑고 나서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로의 ‘슈즈트리’,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첨성대’처럼 또 하나의 예산 낭비 조형물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