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김진표 의원 등 한일의원연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일본을 다녀갔다. 박 원장은 “양국 정상이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접근하고 있다”면서 연내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김진표 의원은 “강제징용 문제는 잠시 봉합하자”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다. 일본 피고기업의 자산 현금화가 당분간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모라토리엄 선언’이다. 손을 쓴다는 얘긴 아니지만, 피해자 측에서도 이런 제안에 반발하지 않고 있다. 도쿄에 부임한 지난 3년간 이렇게 전향적인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어프로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일 국장급 회의 재개와 잇따른 한국 고위급 인사 방문에 대해 “강제징용 문제 해결과 연관성이 1㎜도 없다”면서 아예 기대를 싹둑 잘라버렸다. ‘문재인·스가 선언’ 제안에 대해선 “비현실적”이라거나 “도쿄올림픽을 돕겠다는 건 북한 관계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도 나온다. 언론들은 방점은 “한일관계를 건전하게 되돌릴 계기를 한국이 만들어달라”는 스가 총리의 발언에 있다는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스가 정권에서 한일 관계를 보려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아베 정권의 관방장관었던 스가 총리는 합의 체결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봤다. 아베 총리를 설득해 성사시켰던 위안부 합의가 휴지쪼가리가 되어버린 사건은 스가 총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한다는 건 이 트라우마를 바로잡는 과정이다. 단숨에 해결될 수도, 불신을 말끔하게 없애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참을성 있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다행이라면 스가 총리가 한국 측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국제법 위반’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일본 측에도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의 전환을 기대한다. 아베도 없고 트럼프도 없는 시대엔 좀 더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