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새누리당은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면서 민부론(民富論)을 내놓았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착안한 민부론은 국민을 부자로 만들자는 취지를 담았다. 그 뜻은 매우 좋았다. 현 정권이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격의 소득주도 성장을 강행하자 경제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던 시점이었다. 세금 핵폭탄을 앞세운 부동산 정책과 성급한 탈원전도 막대한 부작용을 낳고 있던 터였다.
보수는 시장경제의 그늘 살피고
진보는 결과의 평등 주장 멈춰야
역지사지해야 공멸 피할 수 있어
바늘구멍처럼 취업문이 좁아지고, 고령화 여파로 노후가 걱정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경쟁 만능과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선거는 1인 1표 아닌가. 그것이 민주주의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무리 공자 말씀을 해도 당장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공감해 주지 않는다. 이에 비해 ‘진보 진영’은 공감의 정치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만 위선 따위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제 자식은 입시와 병역에서 온갖 특혜를 받게 하면서도 정의와 공정을 말한다. 절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긴급 재난지원금을 퍼주고, 추경을 거듭해 현금을 살포한다.
그래도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이들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줬다. 평범한 사람들은 현 정부의 정책이 국민을 위해 꼭 옳지는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최근 나온 『평등으로 가는 제3의 길』(이경태)을 펼쳐보면서 이런 생각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 개발연대에 서울대를 나오고 공무원을 거쳐 국책 경제연구원장에 대사까지 지내며 평생 엘리트로 살아 온 저자가 평등을 거론한 것은 범상치 않은 일이다. 그는 사석에서 자전적 경제평론집을 집필한 배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해외에 나가면 현지 호텔에는 여유 넘치는 한국인들뿐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게 현실일 수 있다. (중략) 그렇다고 복지 만능으로 가면 사회주의가 된다. 사회주의는 불평등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특권층을 빼면 국민 모두 하향 평준화로 가게 된다.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보수 우파는 복지를 수용하고, 좌파는 시장경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크게 공감한다. 민부론처럼 공허한 주장은 대안이 아니고, ‘탈원전’ ‘신공항 뒤집기’ ‘소주성’ 같은 정책 폭주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보수부터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감하게 시장경제의 그늘을 살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 대선도 민주당 내 급진적 좌파는 물론 공화당의 보수주의와도 선을 그었다.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진보 진영은 위선의 가면부터 벗고 ‘결과의 평등’ 같은 무책임한 정책을 당장 멈추길 바란다.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자. 그래야 공멸을 피해 함께 갈 수 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