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아시아나는 줄곧 대한항공이라는 터줏대감을 추격하는 2인자의 숙명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추격 대상에게 인수될 처지에 놓였다.
아시아나는 ‘올림픽둥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태어났다. 당초 서울항공이라는 법인명으로 설립됐던 이 항공사는 취항 직전에 아시아나로 이름을 바꿨다. 소형기인 B737-400 한 대로 김포-부산, 김포-광주 노선을 번갈아 돌린 초미니 항공사였지만 의미가 작지 않았다. 모태와 전신을 빼더라도 이미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던 대한항공 독점 체제에 균열을 낸 기업이라서다.
아시아나는 신선했다. 색동저고리를 소재로 한 CI와 색동날개는 대한항공의 하늘색 기체만 보던 승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세련된 회색 근무복과 전면적 금연 정책 도입 등 차별화한 서비스, 상대적으로 짧은 기령(機齡)도 주목 요소였다. 여기에 해외여행 자유화 정책이 더해지면서 아시아나는 단숨에 급성장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저가항공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단거리 노선 위주의 아시아나는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모기업의 무리한 인수·합병과 뒤이은 ‘승자의 저주’였다. 10년 이상 장기 말의 졸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녔던 아시아나는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결국 경쟁사의 처분에 운명을 맡기는 신세가 됐다.
이번 사태가 유혈(流血)의 최소화와 조속한 화학적 결합을 통한 국적 항공사 체제의 재편으로 순조롭게 이어지길 바라본다. 두 항공사 구성원과 30여년간 아시아나를 아껴온 고객, 그리고 국가 경제를 위해서 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