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는 이 사직서가 군사정부 때인 1965년 9월쯤 쓰였다고 보고 있다. 당시는 한일협정 체결 반대 시위를 벌이던 고려대에 정부가 ‘무기한 휴업령’을 내린 즈음이었다. 조 시인은 ‘학생들이 저항을 부추기는 정치 교수’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사직이라고 판단해 이 사직서를 늘 품에 간직하고 다녔다고 한다.
사퇴이유서
고려대학교에 재직한 만 18년 동안 본인은 미력이나마 기여하여 왔을 뿐 징계받을 과오를 범한 일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본인은 경중을 불문하고 어떠한 징계도 고려대학교로부터 받을 수는 없으므로 스스로 물러나기로 하였다.
이는 고려대학교에 내리워진 휴업령의 철회가 본인을 제물로 요구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하루 빨리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경중을 불문하고 어떠한 징계도 고려대학교로부터 받을 수는 없으므로 스스로 물러나기로 하였다.
이는 고려대학교에 내리워진 휴업령의 철회가 본인을 제물로 요구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하루 빨리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이기 때문이다.
홍 전 총장은 “선생님의 사퇴이유서에는 학생들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사퇴이고 언제든 떠나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담겨 있다”며 “눈을 감기 전까지도 대학과 학문을 걱정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