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두 곳을 통합해 ‘단일 국적항공사’로 재편하면 코로나 난국을 돌파하는 데 일단 도움이 된다. 산은이 구상한 아시아나항공 매각 거래 구조는 3단계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한진칼이 대한항공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인수 숙제
코로나로 정책자금 이미 4.5조 투입
합병이 실익 판단, 김석동 훈수설
진에어·에어부산 등도 단계 통합
경영권 다툼 KCGI 측 “저지할 것”
갑질 등 논란 한진가 오너 리스크
정부 “윤리경영위 신설해 감시”
잘만 되면 정부와 산업은행 주도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될 수 있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업 정상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양대 항공사 체제를 유지하면 2021년 말까지 양사에 4조8000억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최악은 피했다는 얘기다.
국영화 논란으로 인한 부담도 덜게 됐다. 매각 실패로 사실상 국책은행인 산은의 경영관리를 받아야 했던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가에 넘길 수 있어서다. 한진칼 증자 이후 산은 보유 지분은 10.66%로 지배주주는 아니다.
우선 두 회사의 재무구조가 취약하다. 두 항공사의 빚은 대한항공 23조원, 아시아나항공 12조원 등 모두 35조원에 달한다. 부채비율은 대한항공이 1100%, 아시아나항공은 2300%다. 두 회사에는 국책은행이 4조5000억원을 투입했고 이마저도 바닥나 공적자금인 기간산업안정자금에 기대고 있다. 빅딜이 성사된다고 경영이 곧바로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3자 연합(KCGI·조현아·반도건설)의 반발도 남아 있다. 3자 연합은 산은이 조원태 회장 측의 백기사 역할을 한다고 본다. 산은이 한진칼에 대한 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면 한진칼 지분 45.24%를 보유한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0.4%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KCGI 주주연합은 “법률상 허용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항공사 오너 일가의 윤리경영을 감시하는 윤리경영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과거 ‘땅콩 회항’처럼 오너 리스크로 경영이나 항공운항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겠다는 의미다.
인수합병(M&A)이 성사되려면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계열사를 포함한 두 회사의 지난해 말 여객 점유율은 국제선 49%(한국 출발 기준), 국내선 66%에 이른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합병인 데다 공정거래법이 ‘회생이 불가한 회사’의 기업결합은 허용하는 만큼 큰 걸림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사 조종사노동조합과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등 5개 조합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동종 업계 인수는 중복 인력 발생으로 인한 고용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노동자의 의견을 배제한 산은-정부-한진칼의 인수합병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모의 경제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고 산업 경쟁력이 강해진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중복 사업 구조조정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느냐”라면서 “구조조정 없는 M&A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항공사 빅딜 뒤엔 ‘영원한 대책반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한진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이야기다. 김 전 위원장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양대 항공사 통합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조언을 했다. 두 사람은 경기고 68회 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산업은행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경영진이) 제대로 경영을 안 하면 쫓겨나도록 산은이 굉장한 견제장치를 뒀다”며 “(한진그룹) 경영진도 많은 걸 내려놨다”고 설명했다. ‘산은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 준다’는 KCGI(강성부펀드)의 주장에 대해서는 “합의서를 보면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염지현·한애란·추인영·정용환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