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이른바 '비밀번호 자백법' 제정 검토 지시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나 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이 2016년 192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통해 ‘테러방지법’을 반대했던 입장과도 상반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秋, 필리버스터 때 “자유와 권리 보장”
이에 앞서 추 장관은 전날 채널A 강요미수 의혹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을 거론하며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법원 명령 등 일정 요건이 갖춰지면 잠금 해제 등을 강제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추 장관 지시를 법무부는 n번방 사건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한 검사장 수사를 위한 것이고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 지시대로 법안이 제정된다면 국가 위기도 아닌 상황에서 개인의 일상에 대한 감시를 허용하게 돼 테러방지법보다 더 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추 장관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테러방지법 법안에 반대하며 민주당이 신청한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장본인이다. 당시 추 장관은 2시간 넘게 “국가기관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파괴하고, 사생활을 낱낱이 들춰보겠다는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테러방지법을 비판했다.
학계에서도 추 장관의 지시 내용은 국민의 개인정보, 사생활 등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수사기관이 법으로써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진술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며 “(추 장관 지시는) 피의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진술거부권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공안정국보다 더 심하다”며 “이런 법이 있으면 고문이 필요 없어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논란 커지자…秋 “영국에서도 시행”
하지만 영국 정부가 디지털 변화에 대응하겠다며 도입한 수사권한규제법(RIPA)은 현지에서도 사생활과 인권 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국가의 안전이나 안녕을 저해하거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때에만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한국법제연구원에 따르면 영국 RIPA도 법조문상으로는 일반적 범죄에 대해 적용될 수 있지만 비례성의원칙에 입각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고 한다.
한상희 교수는 “개인의 휴대전화를 반드시 알아야 될 만큼 중대한 국가적 이익 등을 필요로 할 때만 고려된다”고 설명했다. 추 장관이 예시로 든 프랑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한다. 프랑스 현지 근무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프랑스의 특별수사 절차는 대테러와 조직범죄, 중대 금융범죄 등에만 적용되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한편 추 장관의 지시 대상으로 거론된 한 검사장은 입장문을 통해 “힘없는 다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오로지 자기편 권력 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을 위해 이렇게 마음대로 내다 버리는 것에 국민이 동의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