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 MMR 백신에 관한 충격적인 내용의 연구가 최고 의학학술지 중 하나인 ‘랜싯’에 게재됐다. 앤드루 웨이크필드 교수가 이끄는 영국 왕립자유병원 및 의과대학 연구팀은 자폐증 등의 발달 장애와 함께 복통과 설사로 고생해온 아이들 12명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대장내시경을 통해 이 아이들의 장 점막에서 특이한 염증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장 점막의 염증 때문에 펩타이드가 지나치게 많이 흡수되는 것이 발달 장애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은 과거에도 있었으므로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연구였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아이들의 발달 장애는 대부분 MMR 접종 후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되었다고 밝히며,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류에 대한 백신 기여 큰데
부작용 크다는 음모론도 기승
불확실성 속 바른 판단하려면
전문가들 의견에 귀 기울여야
결국 2002년, 덴마크 연구팀이 1991년부터 1998년 사이에 태어난 덴마크 국민 전체를 분석하여 MMR 접종과 자폐증 발생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놓아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결국 웨이크필드 교수의 의사면허는 취소되었고, 2010년 ‘랜싯’은 공식적으로 논문을 철회했다. 그렇지만 이 논문의 영향으로 백신 반대론이 한때 크게 힘을 받아 영국은 물론, 아일랜드·미국의 MMR 접종률은 한동안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영향으로 아일랜드는 300명 이상의 홍역 집단 발병을 겪기도 했다.
백신 반대론의 역사는 백신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최초로 개발된 천연두 백신도 자리 잡는데 애를 먹었다.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를 예방하는 DTP 백신도 거짓 정보를 담은 TV 프로그램에 영향받은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혀 한동안 필수 백신 목록에서 빠지기도 했다. 백신 반대론자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백신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큰데, 백신 제조회사를 비호하는 정부가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에 솔깃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판을 잠깐만 두드리면 누구나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그렇지만 넘쳐나는 정보 중 옥석을 가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분야에서 오랜 기간 훈련받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충격적이지만 예외적인 사건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에 십상이다. 음모론은 이를 파고든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교육받은 전문가를 신뢰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것이 전문가의 존재 이유다. 물론 전문가들도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인 입장을 떠나 불편부당한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