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새는 어디 있나요?”
“나는 그냥 자연을 찍은 거고, 그 자연의 한 구탱이에 새가 있는 거지.”
이 선문답 같은 대화의 주인공은 민병헌(66) 사진가다. 오늘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 신사동에 있는 갤러리 나우에서 그의 사진전 ‘새’가 열린다. 20년 간 잡초, 안개, 강 등 여러 주제로 촬영하다 “재밌어서 한두 장 찍어 본” 새 사진들만 모아 소개하는 자리다.
“지나간 것은 미련 없이 다 잊어버려요. 옛날 필름들 뒤져서 뭐 적당한 제목으로 엮을 거 없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나이가 들었는지 필름 정리는 해둬야겠다 생각하고 보니 새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찍은 시간·장소·광선도 다르고, 인화 톤이나 콘트라스트도 다 다른데 그게 또 매력이더라고요.”
“처음엔 컬러사진도 해보고 싶었는데 약품 값에 설비비용까지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죠. 그나마 흑백사진은 만만했어요. 하하.”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의 암실 작업은 절대 만만치 않다. 작은 소리조차 거슬려 환기팬 하나 설치하지 않고, 마스크나 장갑도 없이 독한 화학물질과 씨름하며 낮밤을 거꾸로 살았던 세월이다.
민병헌 작가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음악에 빠졌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친구와 같은 대학을 가기 위해 생각 없이 전자공학과를 택했지만 군대에 다녀온 후 복학하지 않았다. 대신 신촌에서 만화방과 군고구마 장사를 하면서 우연히 카메라를 알게 됐다. 곧바로 고등학교 은사이자 사진작가인 홍순태 선생님을 찾아가 흑백사진을 배웠다. 1987년 ‘별거 아닌 풍경’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잡초’ ‘스노우랜드’ ‘폭포’ ‘강’ ‘누드’ 등을 주제로 꾸준히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을 발표했다. 선배·후배 할 것 없이 디지털 카메라에 빠져들 때도 그는 필름을 사용하는 롤라이 플렉스 중형 카메라만 고집했다.
“성격상 남의 손이 닿는 걸 싫어해서 디지털 카메라를 못 써요. 인화를 맡겨야 하니까. 제일 중요한 이유는 사진을 찍고 바로 보는 게 너무 싫어.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루 종일 찍은 필름을 실수로 망쳐버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배낭에 필름을 넣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내가 오늘 최고의 사진을 건졌다’고 느끼는 충만감이 너무 좋아요.”
“옛날부터 내 사진에는 메시지가 없었어요. 내가 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들어줘’라고 주장하기 싫어요. 그건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죠.”
극도로 불친절하고 이기적인 사진이지만 그래서 더 자세히,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지구에서 최고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죠. 하하.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찍고, 이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고민 따윈 없이 내 머릿속 이미지만 프린트에 담아내니까요. 촬영장소도 유명한 곳이 아니에요. 그저 그곳에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고, 그걸 온전히 나만 즐기고 싶어서 사람이 없는 새벽, 눈·비오는 날을 골라 트라이포드를 받쳐놓고 마냥 보는 거예요.”
“암실 작업을 못하게 되면? 사진도 그만 둬야죠. 몇 십 년 잘 놀았다 박수치고 끝내는 거죠. 내가 암실에서 극도로 집요할 수 있었던 건 다른 면에선 한없이 게을러서예요. 그러니 새롭게 디지털 카메라 배우기가 얼마나 귀찮겠어요. 하하.”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민병헌, 이은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