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특수활동비를 주머닛돈처럼 쓰고 있다. 루프홀(loophole·제도적 허점)이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거론하며 ‘주머닛돈’ 의혹을 제기한 이후 특수활동비(특활비) 논란이 이슈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후보(윤 총장)가 영수증 없이 현금 84억원을 집행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날을 세우는 반면, 야당은 “윤석열 찍어내기에 혈안 된 민주당의 비약”(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라고 방어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위원은 9일 대검찰청을 방문해 대검과 법무부의 특활비 사용 내역에 대한 검증에 나섰다.
은밀한 수사·정보활동 위한 특활비
국방부 1144억, 청와대 157억원 책정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국정원을 제외하면 정부 부처 중 국방부가 1144억원으로 가장 많은 특활비를 배정받았다. 청와대는 대통령 비서실·경호처와 국가안보실 등에 157억원의 특활비가 책정됐다. 추미애 장관의 의혹 제기로 논란이 된 검찰 특활비의 경우 법무부에 책정된 154억원 중 일정 금액을 재배정받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무부의 특활비는 대개 검찰에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특활비는 깜깜이 돈인 탓에 과거부터 때마다 논란이 계속됐다. 특히 2002년 5483억원이었던 특활비는 노무현 정부에서 매년 규모가 늘어 2007년 8137억원에 달했다. 2007년 5월 당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부산시의회 의장 등과의 식사 비용을 특활비로 지불한 것이 뒤늦게 드러나 이를 개인 돈으로 다시 메꾸기도 했다.
2015년엔 신계륜 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의원이 국회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받은 특활비를 자녀 유학 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는 일도 있었다. 같은 해 홍준표 의원 역시 2008년 국회 운영위원장 시절 특활비 일부를 생활비 명목으로 아내에게 건넸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특활비 불법 사용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인 3~4년 전만 해도 여야 원내대표는 매달 2000~3000만 원을, 상임위원장은 500~800만 원의 특활비를 받곤 했는데, 대부분 식사비로 썼지만 사용내역을 증빙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사적으로 유용한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고 말했다.
"특활비 폐지"의 명과 암
2017년 국정원 청와대 특활비 상납 의혹이 커지자 이듬해 7월 당시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은 “대명천지에 깜깜한 돈, 쌈짓돈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회 특활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공개 발언했다. 이후 여야는 국회의장단 몫 일부를 제외한 특활비를 폐지하기로 합의했고, 그 결과 2018년 62억7200만 원이었던 특활비는 2019년도 예산안엔 9억8000만 원으로 84.4% 줄었다. 2020년에도 9억8000만 원으로 같은 수준이 유지됐다.
특활비 축소에 대해 긍정적 평가만 있는 건 아니다. 국회에서도 특활비 폐지로 인해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와서다. 식사 자리나 비공개 대화 창구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2018년부터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쟁점 사안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을 좁히는 창구였던 ‘식사 회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부작용을 감수하며 특활비를 무작정 터부시하기보단 집행내역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특활비 상납 논란이 일어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국정원 안보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 관리 실태가 ‘깜깜이’인 현실이 더 문제 아니냐는 문제 인식이다. 국회 한 정보위원은 “기밀을 이유로 집행내역을 비공개한다 하더라도 내부적으론 언제든 검증할 수 있도록 증빙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특활비가 검은돈이란 국민적 의혹을 없애려면 근거나 증빙 없이는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우·김홍범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