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지도부와 소통해온 박한식 교수 "김정은, 도발 대신 축하 전문부터"

중앙일보

입력 2020.11.09 14:59

수정 2020.11.0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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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북·미 관계와 핵 협상도 전환점을 맞게 됐다.
 
상당수 전문가는 새 행정부가 정상회담을 통한 일괄 합의를 시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탑다운' 방식과 달리 원칙과 실무협상을 중시하는 '바텀 업'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북한이 과거에 쓰던 방식대로 새 행정부 출범 전후 존재감 부각을 위해 도발에 나설 경우 북·미관계가 상당 기간 교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 인터뷰
미국 민주당 대북정책 자문 역할도
"바이든, 탑다운·바텀업 등 일률적 접근 아닌 '멀티 트랙' 추구할 것"
"北도발, 북한을 악마로 보는 미국내 시각에 힘실어줘"

하지만 미국 민주당에 대북 정책을 조언해온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UGA) 명예교수는 예상보다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박 교수는 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바이든의 당선은 중장기적으로 북ㆍ미 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일 것"이고 말했다. 북·미 협상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걸 전제로 "생각보다 쉽게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교수는 또 "김 위원장이 군사적 도발 대신 바이든 당선인에게 축하전문을 보낸다면 바이든 당선인이 움직일 명분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이던 시절부터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선거 캠프에 대북 정책을 자문했다. 또 과거 잦은 방북을 통해 북한 지도부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북·미간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 [중앙포토]

바이든 당선인의 대북 정책을 예상한다면. 
바이든 당선인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화 진전’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조건으로 내건다면 협상이 어려울 것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북·미 협상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바이든 당선인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TV토론에서 김 위원장을 폭력배(thug)로 칭하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는데. 
미국의 정치인들은 북한을 좋게 얘기해서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전문가들 역시 북한에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이 TV 대선토론에서 한 얘기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만남의 전제 조건을 핵능력 감축(draw down)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기 이전엔 안 만나겠다는 게 아니라 감축을 한다면, 비핵화를 향해 나아간다면 대화를 하겠다는 뜻이다.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북미간 긴장이 고조되던 2017년 만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협의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박 교수는 북한에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의사를 전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아 진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박한식 교수]

북·미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장 정상회담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회담할 것이다. 바이든은 군사적 조치(전쟁)보다는 외교적 해결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박 교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접근이 ‘한 건’ 위주의 이벤트성이라면, 바이든 당선인은 실질적인 진전을 염두에 둔 외교적 해결을 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이든 후보는 실무협상(바텀 업)을 강조했는데, 북한도 이런 방식을 수용할까.
북한도 당장 정상회담을 원하는 건 아니다. 김 위원장도 (미국이) 구체적인 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 만난다고 하지 않았나. 실무 협상이건 정상회담이건 의제가 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경제문제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비핵화나 국교 정상화, 평화조약과 같은 큰 문제들은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정치, 경제, 문화, 교류 등 여러 방면에서 멀티 트랙(다양한 접근 방식)을 시도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바이든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낸다면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는 북한을 악마처럼 여기고, 북한이 미국의 본토를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축전이) 이런 생각들을 불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 먼저 바이든 당선인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와 선이 닿아 있는 그의 전력으로 볼 때 북한 지도부가 바이든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내고 싶어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또 2009년 바이든 당선인이 부통령 시절 북한과 물밑 협상을 통해 미국인 여기자를 석방한 전례도 상기시켰다. 하지만 북한이 새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군사적 도발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여전히 나오는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도발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과거 북한은 안보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 발전이 중요하다. 경제 발전을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를 좋게 해야 한다. 무턱대고 도발에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도발해서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나.
 
현시점에서 한국 정부는 뭘 해야 하나.
한국의 국익에 맞는 대북정책과 대미정책을 만들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말로만 하는 '소프트 게임(soft game)'이 아니고, 미국이 생각하지 못하는 ‘주한 미군을 철수하려면 하라’, ‘미국산 무기를 못 사겠다’는 식의 '하드 게임(hard game)'도 때에 따라선 필요하다.
 
한편 북한은 바이든 후보가 당선을 확정 지은 지 이틀이 지난 9일 오전 현재까지 미국 대선과 관련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박 교수의 이번 인터뷰가 일종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박한식 교수는 =민주당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자문해왔으며 2004년 11월 북한과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트랙Ⅱ 대화’를 개최하는 등 50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북ㆍ미 간 가교 역할도 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여기자 석방과 2010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하는 등 민주당과 북한의 물밑 협상 창구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