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에 중동권과의 무역에 오래 종사해 온 지인은 바이든의 승리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가 오바마 시절 맺었던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하는 바람에 한때 훈풍이 불던 그의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바이든이 승리하면 이란과의 합의가 되살아나 사업 기회가 다시 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에게 미국 대선은 결코 남의 나라 선거가 아닌 셈이다.
트럼프의 극단적 자국중심주의로
지난 4년간 더 어지러워진 세계
국제협조주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좀 더 시야를 넓혀 미 대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한 심판이냐, 재신임이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누구나 체감하듯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세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졌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으로 방아쇠를 당긴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격화하면서 세계는 조용할 날이 없어졌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란 핵합의 파기와 같이 전임 정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팽개쳤고, 코로나19와 같은 국제협력이 필요한 사안까지 미·중 갈등의 명분으로 삼았다. 바이든이 당선돼도 미·중 패권경쟁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그 양태는 자못 달라질 수 있다.
일방주의의 파고가 우리에게 밀려온 게 동맹을 돈으로 셈하는 것이다. ‘갈취’란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턱없는 주한미군 분담금을 요구해 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미 연합훈련을 돈 먹는 하마쯤으로 치부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도 기대치 않던 중단 발언을 덜컥 한 게 트럼프였다. 이처럼 무슨 돌출행위나 발언을 할 줄 모른다는 ‘트럼프 리스크’가 상수로 자리잡은 게 지난 4년이었다.
야당을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고, 비판적 언론을 집중 공격하면서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로 편을 나누는 민주주의의 파괴자란 불명예도 트럼프에게 늘 따라다녔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 혹은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결이라기보다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트럼프주의에 대한 평가로 보는 게 더 타당할 수 있다.
우리 손으로 뽑는 것도 아닌 미국 대통령 선거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게 공허한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이기든 지금보다는 덜 어지럽고 덜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할 순 없다. 상식이 통하고 보편적 가치와 민주적 절차가 박물관 유물로 취급당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기여하고 목소리를 낼 몫이 있다. 미·중 패권경쟁과 북·미 관계의 향방도 중요하지만 보편적 가치는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날이 밝았다. 누구를 응원하는 것보다 나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각자 자문(自問)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