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이 ‘열일’을 하고 있다는 건 3년 전 일본에 도착했을 때, 구청에서 깨달았다. 주민등록을 위한 서류 한 귀퉁이에 도장 찍는 칸 3개가 그려져 있었다. 창구 직원이 상급자들에게 두루두루 도장을 다 받아 서류를 내주기까지 20분 넘게 기다렸다.
한국 동사무소에선 창구 직원이 클릭 몇 번으로 전입신고가 완료됐던 것과 비교하면, 투입되는 시간이나 인력 면에서 효율성이 하늘과 땅 차이다. 심지어 요즘 한국에선 집에서도 인터넷으로 전입·전출 신고가 가능하니 행정의 효율성만 놓고 보면 일본은 후진국에 속한다.
후진적인 정부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스가 정권은 ‘행정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장관을 앞세워 전례주의 타파, 디지털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고노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도장이 필요한 서류는 이유를 제출하라”며 전 부처에 ‘탈(脫) 도장’을 압박하고 있다. 도장 다음은 팩스, 종이 등 아날로그의 대표선수들을 하나씩 없애겠다고 한다.
하지만 뼛속 깊숙이 배어 있는 아날로그 행정이 단숨에 바뀔 수 있을지 일본 안에서조차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부 행정에서 온라인으로 완결할 수 있는 비율은 7.5%(일본 종합연구소 조사)뿐이다. 디지털화로 인해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통제한다는 데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도 크다.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마이넘버 보급률이 15.5%(3월 1일 기준)에 그치는 게 대표적인 증거다. 디지털화를 전담할 디지털청이 설립되는 것도 2022년 상반기를 목표로 하는 만큼,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2001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e-Japan 전략’은 ‘5년 이내 일본을 세계 최첨단의 IT국가로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현주소는 정부의 구상과는 정반대다. 오늘도 식탁 위에 쌓여가는 각종 서류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20년 뒤엔 진짜 저 종이 더미가 사라질까.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