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를 발견한 기분이지 않아요?"
정선 너덜 지대 비탈에서 맞닥뜨린 정선바위솔 군락을 두고
조영학 작가가 한 말입니다.
저 또한 외마디 탄성만 나올 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위 무더기 비탈에 고이 숨겨진 '비밀의 정원' 같았습니다.
너덜을 오르내리고, 가로지르며
어렵사리 만난 터라 더 뭉클했습니다.
사실 정선바위솔을 만나려 먼저 삼척을 찾았습니다.
서울에서 300km를 달렸습니다.
깎아 지른 바위에 자리 잡은 고매한 친구들,
제대로 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꽃을 피우기 전이었습니다.
바위솔은 어릴 적에 많이 봤습니다.
기와지붕에 자라는 터라 와송이라 불렀습니다.
흙도 없는 기와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터라
늘 신비하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꽃이 핀 와송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2주 전입니다.
성북동 길을 걷다가 우연히 와송을 발견했습니다.
훤칠한 꽃대를 올리고 기와지붕에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이제 막 틘 꽃에 벌들이 수시로 찾아들었습니다.
난데없이 만난 터라 반갑기도 합니다만,
남의 집 지붕에 핀 꽃이니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셀카봉에 휴대폰을 연결하여
찍은 사진으로만 꽃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눈으로 꽃을 제대로 못 봐 아쉽던 차에
조영학 작가가 정선바위솔을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삼척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으니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때 마침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정선에 꽃 핀 친구들이 수두룩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선으로 달렸습니다.
어둑할 무렵 도착했습니다.
너덜을 오르내리며 수색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바위에 터 잡고 곱게 꽃을 틔운 정선바위솔을 만났습니다.
꽃대에 빼곡하게 핀 꽃들,
아무리 앙증맞은 일지라도
꽃잎 다섯 개, 암술 다섯 개, 수술 열 개씩으로
꽃 모양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꽃대가 30cm 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 친구는 참 독특합니다.
위에서 아래까지 내려가며 색이 다릅니다.
게다가 아래에 작은 꽃들을 여럿 거느렸습니다.
생김과 색이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흙 한 줌도 없는 위태로운 바위에서
먼지 같은 흙에 실낱같은 뿌리를 박은 채
살아내고 있는 건 다 마찬가지입니다.
조영학 작가가 들려주는 바위솔 이야기는 애달픕니다.
"우리나라에 바위솔이 한 10여종 되요.
게 중에서 정선바위솔 색깔이 특히 아름다워요.
옛날 사람들은 바위솔보다
기와에서 자라는 와송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죠.
그런데 지붕 개량하고,
몸에 좋다고 캐가고 이러다가 귀한 꽃이 돼버린 거죠.
생태가 좀 재밌는 꽃이기도 해요.
얘가 사실은 다년생이거든요.
그러니까 10년도 살고 20년도 살아야 하는데,
보통 2년이나 3년이면 다 죽어 버려요.
왜 그러냐면 얘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어요.
그러니까 살모사 같은 꽃인 거죠.
그래서 다년생인데도 불구하고
한 해에 꽃을 피우면 1년생,
두 번째 해에 꽃을 피우면 2년생,
세 번째 해에 꽃 피우면 3년생,
이렇게 끝이 난다는 거죠.
삶이 좀 슬프죠."
꽃을 보고자 오매불망했는데,
이 꽃이 그들 삶의 마지막 종착지라니
여간 짠한 게 아닙니다.
너덜을 오르내리고 가로지르다
어렵사리 만난 '비밀의 정원'에서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들 삶의 마지막 모습이니 좀 더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후, 손전등을 비추어 한 컷 찍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 받은 꽃이 오롯이 사진에 맺혀 왔습니다.
이 꽃에 맺은 열매를 퍼뜨리고 나면 그들은 사그라질 겁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퍼뜨린 열매는
또 다른 '비밀의 정원'을 만들 것이란 기대를 품은 채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인의 SNS에 그 '비밀의 정원'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꽃 하나 없이 텅 빈 바위인 채였습니다.
누군가가 모조리 긁어가 버린 겁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정선바위솔이 퍼뜨린 열매가
또 다른 '비밀의 정원'을 만들 것이란 기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날의 사진이 이 친구들의 '영정사진'이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싹 긁어가면
오래지 않아 이 친구들을 볼 수 없을 게 자명하니
더 안타깝습니다.
'핸드폰사진관 야생화편'을 연재하면서
초지일관 조영학 작가가 한 말이 있습니다.
" 꽃 하나 캐가는 데서 멸종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