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비닐로 나무를 둘둘 감고, 빨간색 불로 그 안을 비추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애니띵] 미국에서 벌어진 장수말벌과 전쟁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벌집에 이산화탄소 주입…장수말벌 질식시켜
이틀 뒤 퇴치 작업에 나선 곤충학자들은 나무 안에 이산화탄소를 넣어 장수말벌들을 죽이고,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벌들을 빨아들입니다. 순식간에 원통 안에는 장수말벌 사체들이 가득 쌓였습니다.
미국 현지에서 아시안 거대 말벌(Asian giant hornet)' 또는 ‘살인 말벌’로도 불립니다. 한국에선 장수말벌로 불리는 토종 말벌 중 하나죠. 몸길이가 4㎝나 되는 장수말벌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입니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에 주로 사는데, 지난해 말 태평양 건너 북미 대륙에서 처음 발견됐죠. 말벌집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위치추적기 부착해 장수말벌집 찾아
워싱턴주 농업부는 살아있는 장수말벌 3마리를 포획한 뒤 이들의 몸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했습니다. 그리곤 장수말벌의 위치 신호를 추적하다 블레인 숲속의 한 나무에 달려 있던 장수말벌 집을 찾은 거죠. 보통 장수말벌은 땅속에 집을 짓는데 드물게 죽은 나무 속에 집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미정부가 이렇게 007 작전까지 펼쳐가며 말벌집을 찾아서 제거하려 한 건 장수말벌의 강력한 공격성 때문인데요. 독침을 여러 번 쏠 수 있는 장수말벌은 꿀벌들을 잡아먹어 양봉업계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수말벌 10마리 정도면 꿀벌 2만, 3만 마리를 30분 만에 몰살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대형 말벌종이 많은 아시아와 달리 북미엔 장수말벌을 견제할 만한 다른 말벌종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이 장수말벌의 습격을 두려워하는 이유죠.
실제로 지난해 말 미국 워싱턴 주의 한 양봉 농가에서는 6만 마리의 꿀벌이 머리가 잘린 채로 죽어 있었는데, 장수말벌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곤충학자인 스벤-에릭 스피치거는 “비록 우리가 지금 여기 워싱턴주에서 이 싸움을 하고 있지만, 미국의 나머지 지역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장수말벌의 서식지 모델은 이곳 태평양 북서부의 해안가뿐만 아니라 미시시피 강 동쪽 어디에서도 살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수말벌집 수백 개 더 있을 것”
장수말벌이 북미 지역에 유입된 지 일 년이 됐기 때문에 습격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말벌 전문가인 최문보 경북대 교수는 “처음 장수말벌이 발견됐을 때 그 일대를 초토화할 정도로 강력하게 초기 방제를 해야 했다”며 “장수말벌이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적어도 수백 개의 장수말벌집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 등 심각한 환경·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영상=왕준열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