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접종 맞은 후 11일 뒤 응급실행
판다-판결 다시보기
2년 만에 나온 결정 “예방접종과 관련성 없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흐른 2017년 7월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원회는 “예방접종과 A씨 증상 간의 근접성은 있다”면서도 “해당 신경병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후 발생에 대한 보고가 없어 백신에 의한 가능성이 불명확하다”고 밝혔습니다. 예방접종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 질병관리청이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이들에게 하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A씨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 신청을 냈습니다. 하지만 2017년 12월 열린 피해보상 위원회는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A씨가 응급실을 찾기 전 설사 증상으로 의원을 방문한 점에 주목한 건데요. 백신 때문이 아니라 길랭-바레 증후군의 주요 원인인 ‘위장관 감염’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합니다.
정부 손 들어준 1심 “위장관 감염 가능성 높아”
1심이 말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소송을 너무 늦게 걸었다’는 겁니다. 행정소송법에 따르면 행정기관이 내린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은 이를 알게 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합니다. A씨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건 2017년 7월 13일이고, 그가 소송을 제기한 날은 2018년 2월 26일이므로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A씨가 겪는 증상이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그 근거는 대한의사협회의 조사 결과에 있었습니다. 협회는 “길랭-바레 증후군과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및 감염과는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논문이 여럿 있다”며 “예방접종이 증후군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반면 “설사와 복통은 위장관 감염의 대표적 증상이고, 위장관 감염은 길랭-바레 증후군의 대표적인 선행 질환”이라며 위장염이 원인일 가능성을 더 높게 봤습니다.
달라진 2심 “질병청, 피해보상 해야”
일단 2심 재판부는 A씨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작점을 2017년 7월이 아닌 12월로 봤습니다. 결론이 같았더라도 두 번의 심의가 이뤄졌고, 두 번째 처분을 기산점으로 본다면 2018년 2월의 소송 제기는 적법하다는 겁니다.
결정적으로는 대학병원장인 신경과 B교수의 신체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B교수는 대한의사협회와 달리 “위장관 감염을 원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소견을 제시했습니다. A씨가 길랭-바레 증후군을 앓게 된 건 예방접종과 위장관 감염 모두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겁니다. 이에 따라 2심은 “예방접종과 증상 발생 사이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인과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A씨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예방접종과 부작용의 인과관계, 폭넓게 인정한 대법원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보상을 받기 위한 인과관계 증명의 정도를 폭넓게 해석했습니다.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질병, 장애 또는 사망이 예방접종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예방접종과 장애 등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다른 원인으로 장애가 발생한 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만 있으면 사실상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의료법 전문가는 “예방접종 이후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개인이 이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만큼 구체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가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이 옳다는 판례”라며 “최근 독감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을 보인 이들도 질병청에 보상을 신청할 수 있고, 거부당하면 이처럼 행정소송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