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1942~2020
그는 10여 년 전 이 회장과 디스플레이 사업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일을 떠올리며 “지금도 그날 저녁 나눴던 대화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미타라이 회장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
10년 전 승지원서 열띤 토론 생생
내가 게이단렌 회장 맡았던 기간
삼성, 소니 제치고 가전 세계 1위
10여 년 전 이 회장과 디스플레이 시장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눴던 그날 저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회장이 갑자기 서울에 있는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한걸음에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갔다. 당시 디스플레이 분야는 액정·플라스마·SED(표면전도형 전자방출디스플레이)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직 전략적으로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 모르는 상태였다. 경쟁업체인 소니나 파나소닉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장은 나에게 여러 의견을 물었고, 나는 당시 “액정 기술에 다소 의문은 있지만 (액정TV가) 비용 측면에선 유리하다”는 생각을 말씀드렸다. 이 회장은 나와 의견이 일치했다. 이 회장은 당시 말씀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통역 없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 내가 게이단렌 회장을 맡은 기간(2006~2010년) 중 가전 부문에서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도 삼성의 경영방식은 상당한 화제가 됐다. 이 회장은 하나씩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자본을 배후로 큰 결단력을 갖고 회사를 크게 바꿔나갔다. 사고방식의 스케일이 대단히 크고 다이내믹했다. 나를 비롯한 일본의 많은 경영인이 그런 방식을 상당히 존경했다. 이 회장도 일본과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아쉽게도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해 10여 년 전 만남이 마지막 교류였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과는 여러 번 만나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2019년엔 내가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럭비월드컵 경기에 이 부회장을 초청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자로서 훌륭하게 성장한 만큼 이 회장도 안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회장이 남긴 가장 큰 레거시(유산)는 역시 시대를 읽는 눈과 결단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장이 건강을 회복해 꼭 다시 만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을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